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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벌레 먹은 사과가 더 달듯이…
  • 전순란
  • 등록 2017-12-04 15: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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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일 일요일, 흐림



공소회장님이 출타 중이라 보스코가 미사 해설을 하고 적은 숫자의 교우들이지만 장 신부님과 함께하는 미사는 소중하다. 오늘이 대림절 첫 주여서 ‘기다림’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 대림(待臨)이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림’이지만 각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 뵐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기다림은 늘 만남을 더 값지게 한다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요즘 아이들이 갈수록 기다리는 일에 서투르다고, 소통도 편지로 오가지 못하고 핸폰으로 즉석에서 하다 보니 차분히 기다릴 줄 모르는 세대라고 하셨다.


공소에 나오는 교우 한 분이 과수원에 사과를 따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서 받아온 사과를 한 상자 가져와 공소식구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주었다. 상처 입고 벌레 먹은 사과여서 미안하다지만, 우리 각자가 이 시골로 귀농 또는 귀촌하기까지는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고서 남겨진 사과 같은 사람들이다. 맛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처 입은 과일이 훨씬 달다. 새나 벌이나 곤충은 민감한 더듬이로 더 맛있는 과일만을 찾아내 공격한다. 아마도 마음이 섬세하여 먼저 익은, 혹은 설익은 삶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많이 보인다. 


지난번 엄마가 쓰러지신 일이 있어 찾아뵈러 오늘 용인 실버타운 ‘유무상통’으로 오는 길이었다. 대전 살레시오수도원 경리신부님께 연락을 받았다. 코스트코에 가보니 크리스마스에 먹는 ‘빠네또네’가 들어왔단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꼭 먹는 케이크고 그곳에 유학한 사람은 그 맛을 알아 선물하려고 우리 대신 좀 사달라고 당부하고서 행선지를 대전으로 바꿨다. 



마침 전국 ‘살레시오 협력자회’(살레시안들의 사업을 후원하며 돈보스코의 정신에 따라서 사는, ‘제3회’) 큰 모임이 개최되고 있어 아는 얼굴들이 많아 우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사온 빵을 우리 차로 옮겨주는 신 신부님께 ‘성가시게 해서 미안하다’니까 ‘빵고 신부님 어머니면 바로 제 어머니’라고 대답했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가족정신은 참 끈끈하다. 수도원에서 점심도 얻어먹었다. 


3시가 넘어 엄마한테 도착했다. 엄마는 기운이 빠져 있고, 그 활달하던 이모는 지난번 낙상 이후 얼굴이 많이 쇠잔해 있다. 옛날 그 우아하던 이모는 초라해졌고, 서울 이모들 옆에 서면 기미만 까맣던 엄마는 이제 아주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계시다.


내가 중학교 다닐 적에, 간혹 서울서 한껏 차리고 우리 집에 놀러 내려온 이모들에 비해 엄마는 너무 늙고 초라해 보였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어 부시맨처럼 뽀글머리(‘엄마는 왜 이모들 처럼 ‘우찌마끼’나 ‘소도마끼’를 안하지?’)에다 늘 일에 지쳐 바짝 마른 엄마의 그때 나이가 ‘마흔 둘’ ‘나는 절대 저렇게 늙어 보일 때까지 안 살 꺼야! 그래, 마흔둘 이전에 죽어야지’ 했었다.



그 무렵 일에 지쳐 돌아온 엄마가 불은 국수에 양념장을 내주시면, 모래도 소화시킬 위를 가진, 우리는 모두 허겁지겁 비벼 먹었다. 꿀맛이었다. 그러던 엄마가 이젠 저리 늙었고 그때 그 딸도 70을 바라본다. 엄마의 가난, 시골이라는 단절된 세계에서 나는 늘 더 넓은 세상,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데 그 세계는 너무너무 멀어보였다. 그래서 늘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는 동안은 꿈을 꿀 수 있었기에. 도서실을 책임지는 국어선생님은 교장사택에 사는 내가 집에 돌아가기를 기다리다 못해 아예 도서실 열쇠를 내게 건네주셨다.


어쩌다 방학에 아버지가 서울 구경을 하라고 데리고 가서 계동에 사는 이모집에 머물면 사촌들이 하는 서울 말씨며 입는 옷과 먹거리는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그때 생전 처음 파인애플 통조림을 맛보았는데, ‘세상에 이런 맛이 다 있구나! 다음에 부자 되면 파인애플만 먹고 살아야지’ 그래선지 나는 요즘도 파인애플을 즐겨먹는다, 부자는 못 됐어도.


잠든 엄마의 늙은 얼굴을 지켜보며 ‘세월 이기는 장사’ 없어 그 앞에 모든 인생이 공평함을, 우리네 어여쁜 여인들도 미모와 자신감을 ‘시간’이라는 주인에게 다 돌려드리고 떠남을, 선하게 나누고 살아온 순간만을 자기 것으로 챙기고서 떠남을 헤아린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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