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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곰스크로 가는 기차’
  • 전순란
  • 등록 2017-12-06 10: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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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화요일, 맑음


김영언니는 오랫동안 여성교회 담임목사를 했다. 향린교회에서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남북통일에 혼신을 다하신 분의 짝꿍인데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 닮기도 하련만 두 분은 닮은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나 조화롭게 살았다. 얼마 전 당신의 허스토리를 ‘시니어 스토리텔링’ 단편영화 만드는 팀에서 만들었는데 ‘어느 한 구석도 나와 맞는 얘기가 없어서 당황했어’란다. ‘나라고 왜 근심 걱정과 힘들 일이 없었겠냐?’고 되묻는다. ‘인생에 화사한 꽃길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언니는 어제 모임에서 설교삼아 리프리츠 오르트만의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주인공은 곰스크를 가보는 게 꿈이다 아내와 일 년간 열심히 일해서 곰스크행 기차표를 샀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별 감흥이 없는 아내와 함께 떠난 여행이지만 크루즈 여행처럼 가끔 커다란 도시나 아름다운 장소에 두어 시간 기차가 머물다가 그 시간동안 구경을 하고 돌아와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 아내도 묵묵히 따른다. 그러다 어느 도시에서 야산에 올랐다 역에 도착해 보니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 표로 탈 수 있는 기차는 그 기차뿐이었고, 그렇게 고생하여 산 곰스크행 기차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둘은 그 마을에서 열심히 일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서.그러나 아내는 일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아름다운 안락의자를 사는 게 소원이었다. 1년 후 두 장의 곰스크행 차표가 마련되었다. 아내는 번 돈으로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아름다운 안락의자’를 얻었다.


곰스크로 떠나는 기차표로 드디어 기차에 올라타려 했으나 화물칸이 없는 기차에 아내가 힘겹게 얻은 안락의자를 실을 수 없었다. 둘은 심하게 싸웠다. 남편은 혼자서라도 곰스크로 떠나기로 맘먹고 기차에 올랐고 아내는 안락의자와 편안한 삶을 살겠다고 그곳에 남기로 했다.


기차가 막 떠나려는데 아내가 “가서 머물 곳의 주소라도 알려주세요,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에게 연락이라도 하게요” ‘아내에게 아이가 생겼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은 기차에서 내려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아내와, 부셔버리고 싶은 안락의자와 함께 그 마을에 남는다. 둘째 아이가 생기자 공석중인 마을에 유일한 학교에 선생이 된다. 나이가 들어 교사 자리에서 물러난 선생님도 실은 곰스크로 떠나려는 평생의 꿈을 가슴에 묻고 늙어버린 분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김영언니는 얘기를 마치고 ‘각자의 곰스크’와 ‘각 사람의 안락의자’를 얘기해 보자고 했다. 


경희언니는 같은 반 친구와 결혼했다. 남해의 가난한 집, 딸 다섯에 큰아들인 남편은 교회 부목사를 하면서도 오로지 꿈은 외국유학이었단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곰스크의 그 남자는 아이들을 위해 기차표를 찢었는데) 포기를 못하고 기어이 당회장 목사님께 1년간의 시간을 허락받고 캐나다로 떠났다. 


세 아이와 교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데 1년이 지나자 남편이 장학금을 찾았으니 언니더러 캐나다로 들어오라 했다. 그러나 말씀이 영험한 목사님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교인들의 기도와 기다림을 배반할 수 없다며 언니가 안 따라 나서자 하는 수 없이 남편은 곰스크에서 돌아와 그 교회에서 40년간 목회를 했다. 지금은 은퇴하여 쉬고 계시다.


이렇게 얘기가 한 바퀴 돌고 내 차례가 되자 후배가 얘기를 가로챘다. “순란이언니는 식당에서 일하는 남자가 기차표도 마련했고, 언니도 안락의자를 드디어 장만했는데, 낯선 남자가 하나 나타나서 기차표 두 장을 흔들어 보이자 그 남자 따라 안락의자도 본남자도 다 놔두고 냉큼 기차를 타고 곰스크로 떠나버렸대요”라며 나를 놀리며 좌중을 웃겼다. 



아무튼 45년 전 보스코 따라 곰스크로 떠난 순란이는 오늘도 자정이 다된 이 시각에도 부엌에서 유자청이 들어간 쿠키를 굽고 있다.


오전에는 보스코랑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고(결혼 첫해부터 트리를 꾸며온 그가 70대 후반이 되어 이젠 손주들과 함께 트리를 꾸미고 싶다는데 그 꿈은 좀처럼 이루어질 성싶지 않다), 점심에는 한목사와 엘리1을 만나 점심을 먹고서 집으로 와서 보스코가 예쁘게 세팅한 식탁에서 올해 첫 성탄 손님을 맞이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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