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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모모
  • 김혜경
  • 등록 2017-12-11 12:04:37
  • 수정 2017-12-11 15: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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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을 말하려면 먼저 작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독특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에밀 아자르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가, 로맹 가리의 가명이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유태인인 그는 일생 한번만 받을 수 있다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로맹 가리로 한 번, 『자기 앞의 생』을 쓴 에밀 아자르로 또 한 번, 이렇게 두 차례나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로맹 가리는 공쿠르 상을 수상한데다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거기다 프랑스 총영사까지 지낸 거물 작가였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졌던 터라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에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했을 거라는데, 한사람 안에서 비평가들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아주 다른 스타일의 문체가 나오다니 대단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름 모모. 자기 앞에 놓인 生을 모모만의 방법으로, 모모스럽게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열네 살 소년. 12월이면 생각나곤 하는 어른보다 어른스런 아이. 이름만으로 괜스레 아릿해지는 모모.  


아랍태생인 모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 칠층에서 구십오 킬로그램이나 되는 육중한 몸매에 예순아홉 살 먹은 유태인 아줌마 로자와 함께 산다. 창녀 출신인 로자아줌마는 모모 말고도 여러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데 모두 친권을 빼앗기기 쉬운 매춘부의 아이들이다. 


▲ 영화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1977)


벨디브사건으로 아우슈비츠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녀는 유태인 동료를 통해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들어 엄마와 아이들이 헤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유태인이면서도 이슬람교도인 모모가 단식을 해야 하는 기간인 라마단을 꼭 지키도록 한다. 겉으론 툴툴대면서도 힘든 몸을 이끌고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맛 난 음식을 만드는 등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마음 따뜻한 아줌마다. 


로자는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 때문에 독일 사람이라면 무조건 덜덜 떨고 한밤중이면 몰살당한 유태인 망령들이 되살아난 듯 노이로제 증상에 시달린다.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이 들어도 초인종 소리만 나면 혼비백산 나뒹굴 듯 방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나치 친위 대원인줄 안거다. 그래서 그녀는 신경증에 가슴이 벌렁거리는 밤이면 낡아빠진 침대며 정어리통조림과 양초들, 변기통까지 남몰래 갖춰 놓은 지하실에 내려가 마음을 가라앉히곤 한다.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고통스런 기억은 세월이 지났지만 로자의 삶 전체를 좌지우지하면서 신체와 영혼을 모두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엄마가 포주였던 아버지 손에 죽은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어린 모모는 엄마가 오려나 싶어 배탈에 발작 같은 꾀병도 부려보았다. 로자아줌마의 이목을 끌려고 집안 여기저기 마구 똥을 싸놓기도 했다. 가게에서 토마토나 멜론 따위를 슬쩍하기도 했는데, 상점 주인이 따귀라도 때리면 마구 울면서 주목을 받기 위해서다. 어떻든 자신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게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소중하게 키우던 개를 더 좋은 환경에서 살라고 부잣집에 팔아넘긴다. 그 대가로 받은 오백 프랑을 하수구에 던져버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송아지처럼 슬피 운다. 또 동네아이들이 예사로이 하는 마약을 절대 하지 않는다. 약 따위로는 진짜 행복을 만들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제 나름대로 삶에 분명한 원칙이 있는 아이다. 


모모네가 사는 곳은 유태인과 아랍인, 흑인들이 많이 사는 가난하고 더러운 슬럼가다. 그네들은 비록 힘들고 어렵게 살지만 인정도 많고 살가운 이웃이다. 이들에게서 모모는 진정한 삶이 무언지를 배워나간다.


자고로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거라는 하밀 할아버지, 모모가 아무 때나 찾아가 병원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도 너그럽게 봐주는 카츠 의사선생님, 늙고 병든 로자와 모모에게 음식과 돈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여장남자 롤라아줌마 등등. 


그런데 로자아줌마가 간이며 심장,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다 치매증상까지 보이고 자꾸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점점 위독해진다. 모모는 큰 병원에 입원해야한다는 카츠선생님을 따돌리고 로자가 미리 마련해둔 지하실, 유태인동굴로 그녀를 몰래 데려간다. 병원에서 의술에 의지해 목숨만 부지하는 짓은 할 수 없다는, 그건 죽느니만 못한 거라는 로자아줌마를 위해서다. 유태인동굴에서 그녀는 원했던 대로 잠자듯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주 죽어 버리도록 더 아프려고 애썼다…. (p.305)


그러니까 모모는 로자아줌마의 죽음을 돕기 위해 그녀와 함께 유태인동굴로 숨어든 거다. 죽은 아줌마의 얼굴에 알록달록 화장을 해 썩어가는 걸 가려주고 냄새를 덮으려 향수를 병째 쏟아 부으며 사람들이 발견할 때까지 삼주일이나 그녀의 주검 곁에서 지낸다. 열네 살짜리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앞의 生을 대하는 방식이다. 


불량하고 가엽고 안쓰러운 모모. 기껏 우산에 옷을 해 입힌 친구 아르튀르 말고는 아무 가진 것도 없는 모모. 그러고도 로자아줌마에 대해 더없이 깊은 사랑을 품고 사는 모모. 그래서 책장을 덮을 때까지 내내 먹먹한 마음이게 하는 모모. 


이 겨울, 모모가 자기 같은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한번 해보라는데, 당신도 할 수 있다며 힘을 내라는데. 사랑, 식상한가? 하지만 뭐 어떤가. 또 한해가 속절없이 저물어가는 12월이고 크리스마스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데 말이다. 


  

벨디브사건 : 1942년 독일점령군의 요구로 프랑스정부가 진행한 유태인 검거사건. 4,500여명에 이르는 프랑스경찰이 유태인 남성은 물론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까지 13,152명을 붙잡아 파리 제15지구 동계경륜장에 수용했다. 이들 중 12,884명은 파리근교 드랑시 수용소 등을 거쳐 차례로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학살당했다.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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