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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따순 잠자리’ 적선도 큰 적선
  • 전순란
  • 등록 2017-12-18 11:20:24
  • 수정 2017-12-18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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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맑음


새벽(아침) 미사를 가려고 나서니 코가 싸하니 시리다. 코야 마스크로 막아도 추운데만 나가면 줄줄 흐르는 눈물은 어떻게 할지 도리가 없다. 눈물 흐르는 골을 타고 얼굴에 얼음이라도 얼 것 같다. 밭에 남아있던 모든 생명들도 자세들 낮추고 동장군이 지나가주기만을 기다린다.


신부님도 음정마을에서 내려오시려면 많이 추우셨것다. 그래도 뭐가 그리 바빴는지 감나무 앙상한 가지에서 까치가 뭔가를 찾는다. 먹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마른들판을 한참이나 둘러보고 우리 감동 쪽으로 날아갔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곶감이 매달려 말라가고 있었으니 장막 밑으로 몰래 기어 들어온 까치가 숙성하며 말라가는 곶감에 입질 할 기회라도 있었다. 들짐승 날짐승을 먹여살리는 분은 하느님이시지만 한겨울 먹이 찾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참 안쓰럽다. 



몇 년 전부터, 여름 내 블루베리 농사로 어깨가 망가진 진이 엄마가 겨울의 곶감 농사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포기선언을 했다. 보통은 남자들이 시작을 쉽게 하고 그 뒷감당을 하느라 망가지는 건 여자다. 그러니 눈치보고 판단하여 포기하는 일도 여자의 몫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대가를 여자가 옴팍 쓰게 되어 있다.


스무 명도 안 되는 숫자지만 공소 회장님이 먼저 내려가 피워놓은 석유난로의 온기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신부님댁에 놀러온 교우들이 여럿 자리를 채워주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이르신다. 대림절도 사순절도 재계하고 자숙하는 계절이어서 중간에 ‘기쁨의 주간’이 하나쯤 끼어 있다. 마냥 엄숙한 얼굴로 재계만 지킬 수 없지 않은가? 교회가 현명하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을 찾아가신 일을 일깨우면서 우리 대모 가브리엘 수녀님이 오랜만에 소식을 주셨다. ‘3감의 삶’을 일깨우는 메시지이니 열 번을 말씀하셔도 과하지 않은 복음이다. 모든 일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그 자체가 복음적이다. 수녀님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이렇다.


엊그제 그 추운 날 드물댁이 문상마을 쪽으로 산보를 가는데 얇은 잠바차림에 얼마나 추워 보이던지 예전에 505털실로 짠 빨강색 세타를 갖고 찾아갔다. 이 추운 날 무 넣고 얼큰한 찌개라도 끓여 잡수라고 아구도 한 봉지 챙겼다. 드물댁은 세타를 입고서 하는 말. ‘등판이 아랫목에 누운 것 같이 따땄하다.’ 그니 집엔 불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따라서 ‘따땃한 아랫목'도 없다. 전기장판 위에 70년대 쓰던, 털 빠진 밍크이불이 썰렁하게 놓여 있다. “밤에 잘 때만 전기 꽂아. 요금이 많이 나오까 바. 낮엔 부시럭거리면 추운 줄도 몰라.” 함양에서는 전기요금이 1만원 이하로 나오면 군에서 내준단다.


내가 가져간 봉지를 열어보고 “요것이 뭐시여?” 물어보고는 그렇지 않아도 친구 검은굴댁이 얼큰한 매운탕이 먹고 싶댔다며 제일 먼저 친구를 챙긴다. 검은굴댁 마르타 아줌마도 집에 군불이라도 뜨끈하게 넣은 날이면 ‘불 넣었으니 자고 가’라고 불러서 어제 밤에도 그 집에서 자고 왔단다. 날씨가 추우니 ‘따순 잠자리’ 적선도 큰 적선이다. 12월말까지는 자식들이 와서 김장을 해 가느라 들락거리기 땜시 1월 가서는 마을회관에서 해먹으니 보름만 견디면 된단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오가며 챙기는 친구가 있어 날씨가 추워도 뼛속까지 시리지는 않다. 어려서부터 이 동네에서 나고 크다 이웃집 총각에게 시집간 아줌마가 여럿이어서 택호도 고만고만하다. 제동댁(제 동네에서 난), 내동댁(동네 안쪽에서 난), 중동댁 (동네 한가운데서 난), 외동댁(동구밖에서 난), 한동댁 (한동네, 같은 동네에서 난)…. 지금도 이런 택호를 대면 난 누가누군지 헷갈리지만 어려서부터 이웃으로 나고 자란 사람들 머릿속엔 혼돈이 없다.


김원장님이 주신 책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으며 많이도 웃었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공중그네를 타는 장면에서 왜 이 사람이 김원장님과 자꾸 오버랩 될까? 정신과를 찾아오는 환자를 자꾸 만나다 보면 의사도 환자가 되어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요즘 자유당의 홍아무개를 보면 ‘비타민주사’가 꼭 필요한 중증환자다. 보스코는 오랜만에 아우구스티누스 작업으로 돌아갔는데 시력이 부쩍 떨어졌다며 자꾸 눈을 부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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