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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예수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7-12-23 10: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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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이사 9,1-3.5-6) 해설

<예언자는 ‘우리를 위하여 태어난 아기’가 가져다주는 구원의 기쁨을 선포한다>


이사야는 유다의 왕 히즈키야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히즈키야는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다가 통치 말기에 가서는 방탕한 나머지 예언자를 실망시키고 만다(참조. 이사 39). 이사 9에 나오는 예언은 이상과 같은 역사 사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예언에서 이사야는 이사 7,10 이하에 나오는 아주 옛적의 신탁 내용을 다시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사야 예언자는 이 예언을 메시아 시대와 직접 연결하기 위하여 현실 역사와의 연관성을 모두 뺀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에서 천대받던 백성)에게, 30년 전에 아시리아 제국에게 먹혀 이제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이라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백성에게 커다란 기쁨, 곧 한 아기의 탄생이 선포된다. 그 아기는 단순히 왕의 아들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등장하는 다윗의 자손이시다.


그 아기의 특징은 왕으로서의 특징이기보다 신적인 특징이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라”(5절) 이사야의 머리에서 늘 떠나지 않던 메시아가 바로 그 아기이다. 그 아기만이 영구적인 평화를 창조해 낼 수 있고, 전쟁과 투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참조. 4절).


시편(95) 해설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 오늘 탄생하셨도다>


‘왕에 관한’ 이 시편도 이사야서에서 이미 살펴본 것과 똑같은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 시편은 왕을 더 이상 존엄하신 하느님을 대신하는 자로 간주하지 않고, 하느님 자신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선언한다(10절: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고).


하느님이 몸소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심판하실 것이다). 무조건 위압적으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로써 다스리실 것이다. 정의와 진리로 다스리는 하느님의 나라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스리는 지상의 여러 나라와 뚜렷하게 다르다.


제2독서(티토 2,11-14) 해설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구원하러’ 오셨다>


티토서의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시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14절).


하느님의 정의는 다름 아닌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은총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증인이 된다 함은 하느님의 정의만을 찾는 것을 뜻하고, 적어도 우리 자신부터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정신을 차려 바르고 경건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12절).


달리 표현하자면, 생명과 구원의 샘이신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유일한 존재 이유를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다는 사실에서 찾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맡기고, ‘희망 없는 사람들’ 축에 들지 않음을 기뻐한다는 것을 뜻한다(참조. 1테살 4.13; 에페 2.12).


복음(루카 2,1-14) 해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하느님의 영광이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뉘어져 있는 갓난아기 위에 빛나고 있다. 그 흔한 세상 사람들 틈에도 끼지 못하시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실로 위대한 증표다.


이 기쁜 소식은 과연 누구에게 먼저 전해졌던가? 경멸을 받고 천대를 받던 천한 인생들인 목자들이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우리 자신은 그 기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자들인지 반성하자). 예언자는 이미 수세기 전에 그 사실을 예고했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이사 6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님께서 탄생하셨다”.


이 갓난아기는 사람들에게 연약함과 무력함밖에 줄 것이 없지만, 그 아기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이 된다. 하느님의 영광을 바로 쳐다보는 자는 죽는다. 그러나 살게 하려고 죽인다(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그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참조. 로마 6.3-4). 하느님의 영광에서 비쳐 나오는 빛은 하느님의 생명을 주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게 해 준다.


이렇게 하여 평화가 자리 잡는다. 법률이 보장하는 평화가 아니라, 대신 속죄하는 죽음으로 얻어지는 평화가 이룩된다.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사람과 화해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은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2코린 5,19-2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천사들이 찬미하는 소리다.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다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환호로써 외칠 수 있는 소리다. 예수님께서야말로 진정 하느님의 영광이요 사람들의 평화다.


묵상


하느님의 영광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루카 2,1) 지상의 큰 인물들과 세력가들이 자기 통치 영역을 넓히고, 자기가 통치하는 인구 숫자를 헤아리고, 자기의 통치 구조를 유지하고 보장하려고 광분하고 있는 동안, 하느님은 당신 나라를 출범시키기 위하여 아무도 반길 사람 없는 가장 누추한 장소를 택하신다. 

베들레헴은 로마의 속국들과 동맹국들이 그려져 있는 지도상에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읍내에 지나지 않지만, 황제의 세밀한 호구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황제의 권한과 ‘로마의 평화’가 그다지 방해받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바로 그 곳으로부터, 사람들의 영광을 물리치는 하느님의 영광의 도전이 역사 가운데 비밀스레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은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이다. ‘평화의 왕자’(이사 9,5)가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나 도시들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노예로 삼는 그런 식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환호하며 마중 나가는 군중도 없고, 승리의 월계관도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숨어서 가난하게 오셨다. 그에게 태어날 방 한 칸 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우리 신자들로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장벽이다. ‘모순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사실’이다. 세력과 재물을 과시하는 세상과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재물과 세력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 것이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와 퀴리노 총독은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집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마구간에 태어난 아기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겨를이 전혀 없었다. 시종 하나 거느리지 않은 초라한 세 여행객에게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큰 인물들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여관에도 해산하려는 마리아와 요셉을 위해서는 자리가 없었다. 가난했던 것이다. 사업은 사업이다. 돈 벌고 재산 모으면 그만이다. 많이 투자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막 몸을 풀어야 하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 여자에게 베들레헴에서 아무도 집을 내어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얼어붙었던 것일까? 모든 사람이 사업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단 말인가? 


성가신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둥 여러 이유와 변명도 있을 수 있으리라. 우리 시대에도 급박한 상황에 처한 가난한 사람들이 인류의 대부분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도 변명을 일삼겠는가?


아우구스투스 황제나 퀴리노 총독이나 여관 주인들이나 베들레헴 주민들이나 그 누가 자기네들이 초라한 부부의 아들, 곧 하느님의 아들을 배척했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것은 오늘날에도 인류가 자기 손으로 저지르는 악행이다.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줄 자리가 없을 때, 우리 주변과 우리나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멀리 떨어진 가난한 나라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할 때,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역사 밖으로 몰아내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할 때 우리는 억압하시지 않는 영광을 배척하는 꼴이 되고, 죽이지 않는 평화를 뿌리치는 꼴이 된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영접한다


권세를 가진 자들도, 궁전도, 영업하는 여관도, 이기적인 집도 가난한 자 앞에 문을 닫았다. 가난한 자 아기 예수님께서 마구간을 궁전으로, 여관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집으로 삼으신다.


당시에 천대받던 무리에 속한 목자들이 맨 먼저 하느님의 나라의 전위대가 된다. 이것은 모든 시대에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구원의 복음을 우선 받아들이는 특권이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있다.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오늘 너희의 구세주님께서 나셨다”(루카 2,10).


베들레헴으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출발했다. 모든 시대와 온갖 문명과 온갖 문화와 온갖 종교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처신에 따라 구원을 받기도 하고 단죄를 받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외면당하고 짓밟히고 있는 한, 성탄 축일은 공허하고 위선적인 축제일 따름이다. 가난하게 태어나신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여 축제를 지내는 의미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메시아를 발견하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수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독서·복음



제1독서(이사 9,1-3.5-6)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도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정녕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다.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다. 그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공정과 정의로 그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켜 가리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시편(95)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 오늘 탄생하셨도다


제2독서(티토 2,11-14)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도다>


사랑하는 그대여,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루카 2,1-14)

<너희를 위하여 오늘 구세주 탄생하셨도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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