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1929년 미국 뉴욕 출생, 한국명 진필세)가 선종한지 3주기가 되는 지난 23일, 시노트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이번 추모미사에는 특별히 시노트 신부가 1960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한국에 들어와 사목했던 영종도 지역 신자들과 ‘제2차 인혁당 사건’으로 알려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생전 시노트 신부님과 함께 했던 특별한 기억들을 풀어놨다.
배고픈 이 배 채워주고, 헐벗은 이 옷 입혀준 사람
인천 용유도 본당의 한 신자는 어느 겨울철 시노트 신부와 함께 인천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로 들어가 거기서부터 용유도로 들어갈 때 바닷물이 빠지면 신발을 벗고 걸어서 건너다니던 일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그는 시노트 신부를 ‘배고픈 사람의 배를 채워주고, 헐벗은 사람의 옷을 입혀준 분’이라고 기억했다.
제2차 인혁당 사건은 1974년 4월 중앙정보부가 유신반대로 투쟁했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맨)의 배후세력을 ‘인혁당 재건위’라고 지목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1975년 대법원에서는 해당 사건 관련자 8명에 사형선고를 하고 판결 18시간 만에 이례적이고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언론인, 종교인 등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이 빗발치던 그해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폭로했다가 한국정부에 의해 추방되었고, 그 후 남미와 미국을 다니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타도를 외쳤다.
신학교에서 항상 기도만 하고 성당에서만 지내라고 배웠는데 어느 날 방송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설교가 나왔다. ‘꿈을 가져라, 세상을 바꾸는데 투신하라’는 내용을 듣고 놀라며 가톨릭 신부로서 회개했다. - 시노트 신부 생전 함세웅 신부에게 전한 말
이날, 미사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는 생전에 시노트 신부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시노트 신부는 생전 김수환 추기경에게 ‘가톨릭은 뭐하냐, 노동자가 감옥가고 핍박받고, 학생들이 감옥 가는데 가톨릭은 성령이 안 계시냐, 썩은 가톨릭은 반성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이에 김수환 추기경이 시노트 신부에게 우리를 깨우쳐 줘서 고맙다며 따뜻하게 맞아줬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사회 민주화의 은인, 진 시노트 신부
함세웅 신부는 시노트 신부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을 세상으로 이끌어 낸 분 중 하나”라며 “항상 뒤에서 우리를 자극해 주시고 정의구현사제단의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사회에 민주화를 위한 은인이라고 했다.
또, 함 신부는 “가톨릭의 기도는 죽은 기도”라면서 “항상 본기도 후 오늘 만난 교우들, 가족들, 남북 일치 등을 위해 개인 기도를 바친다”며 “내가 살아온 길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라고 전했다.
힘 신부는 이날, 제2독서 말라키 예언서를 설명하며 “말라키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그 뜻이 ‘하느님이 보내신 특사’이고 시노트 신부님을 포함해 세례 받은 우리 모두가 특사”라며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삶을 살자고 청했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의 유해는 현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 ‘평화의 문’에 안치되어 있다. 이날 추모미사를 함께 봉헌한 신자들은 한 명씩 시노트 신부의 납골함에 손을 대고 묵상하며 제임스 신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