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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난생 처음으로 발견한 ‘희망’이란 단어
  • 전순란
  • 등록 2017-12-29 12: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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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맑음


리따네 아파트 14층에서 보는 영산호로 떠오르는 태양은 찬란하다. 나는 추워서 웅크리는데도 리따는 워낙 에스키모족 출신인지, 발도 덥다고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잠을 잔다. 추워서 일찍 일어나 거실에 나왔다 아예 집을 통째로 난방해줄 태양을 내가 불러냈다.


계란 두 개에 접시 한가득한 과일, 찰랑찰랑 커피우유로 아침을 하고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우리 오늘은 뭐하고 놀까?” 목포도 겨울은 지리산 보다 좀 더 춥다. 이 추위에 새벽 같이 바다에 가기도 그렇고, 3년 전 여름밤에 “전순란 여사 목포 입성 축하!”라는 문자로 바다분수까지 쏘아 올려 내 입지를 충분히 굳혔으니 그냥 집에서 뒹굴며 놀자니까 리따가 마다한다.




리따가 오랫동안 후원하는, 그룹홈 ‘경애원’엘 가잔다. 경애원은 6·25전쟁 후에 그 많은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1952년에 목포에 건립된 고아원이란다. 그러다 1987년에 카리타스수녀원에서 인수를 해서 오늘에 이른다.


1957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살레시오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있던 맏이 보스코 외에 세 동생은 고아원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둘째 준이서방님과 막내 훈이서방님이 어떤 곡절로인가 목포까지 와서 맡겨진 곳이 바로 이 ‘경애원’이었다. 그래도 둘째형과 함께 있던 때는 훈이서방님으로서는 견딜만한 시간이었으리라. 형이 떠나고 혼자 남은 막내로서는 늘 서리 내리는 겨울날, 병든 병아리 신세였으리라.




배가 너무 고파 힘없어 양지바른 곳에서 배고픔을 잊는 유일한 방법은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단다. 그러다 어느 날 맏형과 함께 고아원을 찾아오신 살레시오학교 교장 기 신부님에게서 “이 담에 중학교에 들어가면 살레시오 학교에 와서 함께 살자”라는 말씀을 들었단다. 먼 훗날, 훈이 서방님은 그날 그 말씀에서 난생 처음으로 ‘희망’이란 단어를 배웠노라는 글을 썼다.


이미 세월은 까마득하게 흘러 그 당시 길거리에서 거두어졌던 아이들이 지금은 60대 중반이 훌쩍 넘은 초로의 할아버지들이 되었겠다, 훈이 서방님이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지가 벌써 서너 해 전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결손가정에서 온 아이들, 이주여성들이 불행한 결혼의 소산으로 남겨놓고 간 아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룹홈 원장 수녀님을 아이들은 ‘엄마’라고 부른단다. 수녀님의 1인용 침대에, 서너 살짜리부터 고딩까지 수녀님이 담당하는, 여섯 명이 다 몰려오곤 한단다. 엄마수녀님이 방바닥에서 자면 모두 바닥으로 내려오고, 엄마 수녀님이 침대로 올라가면 모두가 따라 올라와 겹쳐 자니까 수녀님은 밤마다 전쟁을 치루신단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독감도 함께 걸리고 뱃병도 함께 난단다. 어젯밤에도 열이 40도 가까이 오른 한성이와 영주, 두 아이를 데리고 야간 소아병원을 찾아 헤매셨단다. 오후 근무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수녀님이 외출하려고 나서자 아이들이 단체로 대성통곡을 하며 ‘엄마’를 불러대는 광경을 목격하며 이 어린애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깊은지, 여기 와서 ‘다시 만난 엄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극진한지 한눈에 보였다.


수녀님과 함께 목포로 나와서 우리 둘은 갓바위가 있는 겨울 바다를 거닐었다. 옛날 8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함께 몰려다니던 여행이야기, 아이들 얘기, 김수환 추기경님이 로마에 오실 적마다 리따네 집에 모셔 식사를 대접하고 환담을 나누던 얘기, 빵고가 추기경님 무릎에 올라앉아 재롱부리던 얘기, 그때마다 추기경님이 리따더러 양희은의 ‘한 사람 여기’라는 노래를 불러달라시던 소소한 추억까지 그니는 간직하고 있었다. 35년이 흐른 지금 마주 앉아도 변함없이 고마운 친구다.



참치들이 횟집 손님이라면 김밥말이에다 ‘갓 잡아 싱싱한 사람고기’ 푯말을 달게다


‘목포는 항구다!’ 그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회로 저녁을 먹고, 목포역 로데오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목포의 명물이라는 ‘코롬방’ 빵집에서 빵을 사고서 그 거리에 ‘내칭고 쿵둑이’를 홀로 남기고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옆구리가 허전한 친구를 그냥 두고 오자니 그니가 ‘징그랍게 짠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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