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오라버님의 ‘하느님 걱정’과 아우님의 ‘하느님 땡큐’!
  • 전순란
  • 등록 2018-01-02 11:22:52

기사수정


2018년 1월 1일 월요일, 맑음


1월 1일 새해 첫 시간을 성당에서 맞이했으니 올해는 일 년 내내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주님에 집에 가자 할 때 내 마음 몹시 기뻤노라, 내 마음 몹시 기뻤노라.” 시편의 어느 구절이다. 자정미사 중 성당 불이 다 꺼지고 묵상을 했다. 


미사해설자는 올 1년을 늘 감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사랑하도록,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가난한 사람을 늘 우선적으로 돌보도록, 남의 나쁜 점을 보고는 눈감고 나쁜 소리는 입 밖에 내지 말도록… 소박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늘 깨어 실천하고 또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마음에 와 닿았다. 성인이 되는 길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마음만 먹고 손만 뻗으면 곧 손에 잡힐 것이다.



새벽이 되니 ‘카톡! 카톡!’이 울리면서 멀리서 가까이서 친지들이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내줬다. 박수녀님은 울릉도 해를, 어느 페친은 해운대 해를, 미루는 지리산 해를, 파스칼 형부는 남해 해를, 리따는 목포 해를 보내왔다. 마리오는 눈이 하얀 산마르티노 알프스 산자락을 보내왔다. 새해 아침이어서 세상이 다 새로워 보인다.


엄마 곁에 가서 밤을 지낸 동생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어제 밤 엄마가 너무 조용히 주무셔서 두 번이나 일어나 엄마 얼굴을 들여다봤단다. 보스코 말이 나도 참 조용히 잔다지만 엄마도 정말 소리없이 주무신다. 



사흘 전 옆방에 92세 된 할머니가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기에 혹시나 해서 엄마 코에 귀를 대보았단다. 남의 엄마야 그렇게 가시면 호상이라겠지만 ‘울 엄만 (97세이셔도) 더 사셔야 한다’는 게 호천이 지론이다.


이모의 영세 대모이시고 엄마의 이전(李專) 동기동창이 유무상통에 계시다. 엄마와 동갑인데도 날마다 우아한 옷차림과 엷은 화장으로 고우시다. 승강기를 기다릴 때도 울 엄마는 대기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승강기 문이 열리면 밀차에 의지하고 겨우 타시는데 그분은 꼿꼿이 서서 기다리시다 반듯하게 타고 내리신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며칠 전 쓰러져 몸을 쓸 수 없게 되자 도움을 필요로 하는 3층으로, 엄마가 계신 3층으로 내려오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너무 자존심 상하고 낙담하셔서 아무도 안 만나려고 하신단다. “누나, 울 엄마는 적당히 바보가 돼서 다행이야. 자존심도 다 내려놓고, 당신이 제일 행복하다고, 늘 감사하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말없이 늘 웃기만 하고 ‘그래, 좋다!’만 하시니 우린 ‘하느님 땡큐!’야 그치 누나?” 나도 늙어 그때쯤엔 머리에 총명함을 잃지 않기를 늘 기도하지만, 그보다는 마지막에 가서는 ‘다 내려놓는 은총’을 지금부터 기도해야겠다.



연말의 몇날 며칠을 사람들과 함께한 끝이라 오늘은 우리 둘이서만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지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먹었으므로 귀요미 미루가 보내준 떡국과 백김치로 둘이서만 소박한 점심상으로 정월 초하루를 맞았다.


오빠한테 같이 점심을 하자니까 친구와 선약이 있단다. ‘어떤 사람이 정월 초하루부터 같이 식사를 하재?’라니까 아내가 엄청 아픈 사람이란다. ‘친구 해주러 가니 잘됐다, 몸이든 맘이든 마누라 아픈 사람끼리 서로 위로가 되시라’고 축원 아닌 축원을 해주었다. 어제는 (세모인데) 뭘 해먹었느냐 물으니 동태찌게를 끓여먹었단다. 오빠는 동태 한 마리를 사오면(그는 곧잘 생선을 사들고 들어온다) ‘머리는 아가미젓’ ‘창자는 창란젓’, 알을 뱄으면 ‘명란젓’을 담가야 하고, 그 연후에야 찌게를 끓여야 ‘살림하는 여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세탁기는 일주일에 한번 돌리고, 마지막 물은 양동이에 받아두었다가 변기에 쓴단다. 대변 한 번 볼 때마다 반 양동이 분량! 그게 물부족 국가에서 ‘국민된 자세’란다. 음식 할 때 감자나 양파 모두 솔로 깨끗이 씻어 껍질째 먹는 게 영양상으로도 좋고 쓰레기를 줄이는 ‘신앙인다운 자세’란다.



자기는 상자나 종이류는 수거해가는 할머니들을 위해 테이프를 제거하고 크기를 나란히 맞춰 꼭 묶어 내놓는단다. 두어 달 살아보니 쓰레기라곤 페트병 두 개 분량이 전부더란다. “교회 다니고 성당 다닌다는 사람들, 종이박스에 귤껍질 비닐 등을 담아 되는대로 집밖에 버려, 종이 수거 할머니들이 이 추위에 아픈 다리로 쭈그리고 앉아 수거해 가게 만드는데, 그러고서 교회나 성당 간다고 천당가겠냐? 모르긴 해도 천당이 텅텅 비어 하느님 심심할 게다.” 양부모님을 장로로 두신 오라버님의 하느님 걱정. 심히 지당하신 말씀들이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니 아내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건…


어제 혼자서 영화를 보고 돌아왔는데 설거지해서 산더미 같이 쌓아둔 그릇들이 종적을 감춰 그릇장을 열어 보니 우리집 우렁이 신랑이 그림처럼 정리를 해 놓았다. 말 수 적어서 좋은 우렁이지만 미안하고 좀 찔렸다. 참 부부가 함께 잘 살아가자면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