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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가짜뉴스는 과민반응의 징표며 증오를 확산한다”
  • 끌로셰
  • 등록 2018-01-29 18:33:17
  • 수정 2018-01-31 15: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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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 HOLY SEE PRESS OFFICE >의 1월 24일자 보도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보기) - 편집자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제52차 세계 소통의 날(World Communication Day)을 맞아 ‘가짜 뉴스와 평화 저널리즘’이라는 주제로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은 이 담화에서 소통의 목적과 결과가 언제나 평화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단순히 “심각한 문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감정적 선동의 향기가 나는 사카린 저널리즘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소통이란, 우리를 위한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며 유대감을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그러나 “자만 혹은 이기심을 이기지 못 하면, 우리는 소통 능력을 오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마치 바벨탑에서 일어난 일과 같다고 말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계획에 충실히 따를 때, 소통은 책임감 있게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실질적 표현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오늘날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하며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을 막고 저널리즘의 존엄성과 진실을 전달해야 할 기자 개인 책임의 재발견”을 위해 이번 담화를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가짜 뉴스의 개념에 대해 “온라인 혹은 전통 매체에 거짓 정보(disinformation)를 유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짜 뉴스는 “존재하지 않는 정보 혹은 독자를 기만하고 조작하기 위해 왜곡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정보와 연관이 있다”고 덧붙이며 이러한 가짜 뉴스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되거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끼치며 경제적 이득에 봉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를 흉내(mimic)내는 능력, 그럴싸하게 보이는 능력이 있으며 흠잡기를 목적으로 하거나 고정관념에 기대거나 불안, 경멸, 분노, 절망과 같은 즉각적 감정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또한 가짜 뉴스는 “소셜 네트워크를 여론 조작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소셜 네트워크 작동 방식으로 인한 것”이라면서 거짓된 이야기들이 너무나 빨리 전달된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가짜 뉴스를 밝혀내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다른 관점과 의견에 개의치 않는 일원적 디지털 환경에서 소통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거짓 정보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건설적 대화를 구축할 수 있는 다른 정보 출처와의 건강한 대립이 없는 현실을 양분으로 삼는다”고 말하며 “거짓 정보는 타인을 깎아내리고 적으로 규정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가짜 뉴스는 관용이 부족하고 과민한 반응의 징표이며 자만과 증오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교황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거짓말에 대응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며 “거짓 정보가 작동하는 방식을 식별하고 방지하기 위해서는 면밀하고 세심한 식별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짜 뉴스가 ‘뱀 전략’으로 작동한다면서, 여기서 ‘뱀’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간교한 뱀’이 사용했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은 “거짓된 논거들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좀먹는 교활하고 위험한 형태의 유혹”이라고 비판했다.


가짜 뉴스가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가짜 뉴스가 인간에게서 쉽게 끓어오르는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러한 가짜 뉴스는 결국 우리의 욕망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거짓 정보를 조장하는 경제적 목적과 여론 조작 목적 역시 권력에 대한 욕망, 소유와 환락에 대한 욕망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가짜 뉴스로 인해 우리 모두는 “하나의 거짓말에서 다른 거짓말로 이어져 결국 우리에게서 내적 자유를 빼앗아가는 기만적 악의 권력의 피해자가 된다”고 한탄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요한복음을 인용하면서 교황은 “기만적 언어를 통한 끊임없는 오염은 우리의 내적 삶에 어둠을 가져온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의 한 부분을 인용해 설명하기도 했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에 있는 진실을 감지하지 못하며, 반드시 자신이나 타인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으며 사랑을 멈추게 되면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찾기 위해 애정이 결핍된 상태에서 욕망과 색정에 몰두하여 자신들의 결점이기도 한 야수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모두가 타인들과 자신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데서 비롯되지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2011, 열린책들)


이러한 가짜 뉴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실을 통한 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진실이란 “단순히 우리 판단 근거가 되어 참과 거짓을 정의하는 개념적 현실”이 아니라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이라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내가 진리이다’ (요한 14,6)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리란 어느 외부에서 강제되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자유로운 관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연스레 흘러나올 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리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일치를 돕고 선을 증진시키는 것과 분리, 분열, 대립을 일으키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평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거짓에 가장 좋은 해독제는 다른 어떤 전략이 아닌 바로 사람


교황은 “욕망에 굶주리지 않고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진실한 대화에 참여해 진리가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소식의 보호자(protectors of news)인 기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책임이 올려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정보의 핵심은 보도 속도 혹은 독자에 끼치는 영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며, 이는 사람들의 삶과 항상 맞닿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출처의 정확성과 소통의 보호를 보장하는 것은 일치와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진정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교황은 평화 저널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강조했다. “모두가 평화 저널리즘을 증진시켜 나가기를 권고한다”면서 “하지만 이것이 심각한 문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감정적 선동의 향기가 나는 사카린 저널리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 저널리즘은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저널리즘, 특히 목소리가 없는 이들을 돕는 저널리즘이다.


이러한 저널리즘은 “속보에 집중하기 보다는 갈등의 근본적 원인을 탐구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돕고 갈등의 해결에 기여”하며 “고함을 지르며 싸우거나 말싸움의 심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데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 담화 끝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에서 영감을 받은 ‘평화 저널리즘을 위한 기도’를 덧붙였다.



주여, 저희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평화를 이루려 하지 않는, 소통 안에 숨어있는 악을 식별할 수 있게 저희를 도와주소서

저희 판단에서 독을 없앨 수 있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형제자매로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은 충실하고 믿음직한 분이시니 저희 말이 세상의 선을 위한 씨앗이 되게 하소서

고함이 있는 곳에서 경청하게 하소서

혼란이 있는 곳에 조화를 불러오게 하소서

모호함이 있는 곳에 명료함을 가져오게 하소서

배제가 있는 곳에서 연대하게 하소서

감정주의가 있는 곳에서 침착한 태도를 보이게 하소서

피상이 있는 곳에서 진정한 질문을 하게 하소서

고정관념이 있는 곳에 신뢰를 일깨우게 하소서

적대감이 있는 곳에 존중을 가져오게 하소서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가져오게 하소서 

아멘.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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