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 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한국 평신도들의 영성은 과연 지금 어떠한 수준인가? 서울교구보좌주교로 임명된 유경촌 주교는 『21세기 신앙인에게』(가톨릭출판사, 2014)라는 저서에서 가톨릭 사회교리 해설을 통해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고 있는 신자들에게 ‘신앙적 성숙’을 요구했다. “성숙한 신앙은 나이와 상관없으며,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묻는다. 성숙한 신앙은 모든 사람을 ‘확대된 자기 자신’으로 느끼기 때문에, 이웃의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나눔마저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넘어서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며, 보이지 않는 차원까지 끌어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유경촌 주교는 “하느님이 아닌 어떤 것,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어떤 것을 하느님으로 잘못 섬기는 모든 행위는 결국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라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정당한 자리가 어디인지’ 묻는다. 이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오히려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한 사례로 종교재판과 십자군 전쟁, 신대륙 발견 때의 인종 학살과 노예제도용인, 유대인 박해 등을 들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천년을 맞아 교황청 신앙교리성 국제신학위원회를 통해 발표한 <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 >이 귀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유 주교는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솔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며, 그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당면한 어려움들과 싸워 나갈 수 있는 더 강한 신앙을 얻는다”고 말한다.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해성사와 미사 요청을 거부했다. 그리고 뤼순 감옥에 찾아가 안중근 의사에게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준 빌렘 신부를 징계했다. 안중근 의사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아들자식이 사제가 되기를 청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교회는 고백도 미사도 성소도 받아 주질 않았다. 104년이 지난 2014년 3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남긴 유묵 ‘경천: 敬天’이 서울 옥션 경매장에 7억 원에 나왔으나 유찰되었고 바로 서울 잠원동 성당에서 5억9000만 원에 경천을 사들여 서울대교구에 기증했다고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의 청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돈 되는 것은 재빠르게 받아 챙기는 순발력은 무엇인가?
그 후 한국교회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성찰과 함께 ’쇄신과 화해’ 라는 반성 문건을 발표했다. 그 내용의 요지는 2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외부세력에 편승 야합하여 민족의 안녕과 평화에 이바지 하지 못했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인권 신장과 보호를 등한시했으며, 성직자들이 그릇된 권위의식과 물질 팽창주의에 빠졌고,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관점을 가져왔음을 반성했다. 그리고 교회는 이후로 공동선과 정의와 평화, 인권신장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2000년 12월 3일 주교회의, 『쇄신과 화해』 중). 그러나 여전히 결정권을 가진 고위 사목자들은 실질적인 교회의 친교나 사회에서의 역할, 영성의 심화 보다는 제도교회의 확장과 보호, 외형적 성장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사람들은 민주화-복음화 보다는 개인 구원의 문제와 관념의 문제에 빠져들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새로운 추기경으로 임명된 대주교는 정치나 사회 현안에 관한 직접적인 발언은 자제해 왔다. 그러나 2013년 11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시국 미사를 열어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것에 대해서 ‘가톨릭 교리서’ 등을 근거로 “사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정치 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적 트라우마가 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방문한 교황은 “고통에는 중립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나라 추기경은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자꾸만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한다”고 말해 사회적 논란과 분열이 가중되었다. 과연 추기경은 교황의 말대로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선 것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14년 2월 20일 교황청 공식 일간지 < L’Osservato Romano >에 실린 인터뷰에서 새로운 추기경은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정부가 국민과의 공감대를 잃어버린다면, 5년 후에는 바꿀 수 있다”며,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은 비이성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자와 주교가 공감대를 잃어버리면 5년 후에 우리도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사제들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지만 “1987년 이전에는 그들과 연대했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은 확실히 변했다. 더 이상 싸워야 할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없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사제단이 과거에 한국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정부에 반대하기보다 그들의 역량을 사람들의 실질적인 요구를 위해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보다 더 복음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그들을 소외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분열된 이미지가 교회를 손상시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염 추기경이 그렇게 지지하며 응원했던 박근혜는 2017년 3월 온갖 추문과 비리, 부정부패로 탄핵 심판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대통령과 비선실세들 재벌기업들이 막대한 부를 빼돌렸고 이에 협조한 집권여당의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 천주교 신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여기서 더 복음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추기경에게 묻고 싶다. 분열은 오히려 이러한 발언의 파장으로 생겨난 신자들 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교회의 사회운동에 대한 교회권력자의 치우친 발언은 교회의 분열과 혼돈을 초래한다. 이후에 추기경은 외국어 소통의 문제를 들어 보도내용의 수정과 왜곡을 언급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교회의 최고 사목자들은 이런 시대의 징표와 흐름을 인식하고, 현장에서 투신하는 이들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이해와 공감을 해야 할 것이었다. 지난날 발표했던 쇄신과 화해의 주교단 메시지가 지난한 한국현대사의 현장에서 사회 민주화와 민중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로 남을 수 있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른 교회 내 기구, 기초 공동체와 소공동체, 사회운동과 여러 형태의 단체는, 여러 가지 지역과 분야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에 있어서 풍요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가 쇄신되는 동안,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공동체들이 지역 본당의 다양한 현실과 계속해서 접촉하고, 적극적으로 지역 교회의 전반적 사목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이롭다는 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통합은 공동체가 복음의 일부 혹은 교회의 일부에만 집중하는 일, 혹은 뿌리 없는 유목민이 되는 일을 막습니다.(『복음의 기쁨』 29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