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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노자와 교회 : MB와 물
  • 김유철
  • 등록 2018-02-27 11:24:43
  • 수정 2018-02-27 11: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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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中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惟不爭 故無尤 (노자 8장)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 있으니 그러기에 道에 가깝다. 사는 데는 땅이 좋다. 마음은 깊은 것이 좋다. 벗을 사귐에는 어진 것이 좋다. 말은 성실한 것이 좋다. 정치는 자연의 도리로써 다스리게 좋다. 일은 잘 할 줄 아는 게 좋다. 움직임은 때를 맞추는 게 좋다. 오직 다투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탓할게 없다.


액자와 책은 장식품이 아니다.


어느 집에나 한 개쯤의 액자는 걸려있다. 액자에 담긴 주제가 다양하듯 그것을 표현하는 액자도 주인장의 기호에 따라 그림, 사진, 혹은 글씨든 여러 가지 중에서 선택하기도 한다. 책 역시 마찬가지다. 서재라고까지 부를 수 없는 일반 가정집 책꽂이에 담긴 책을 일별하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취향 등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법도 하다. 물론 그렇게 해서 걸어놓은 액자의 내용이나 책꽂이의 책과는 거리가 먼 삶의 모습이 자신에게는 반성이 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부메랑이 되어 냉소의 대상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MB라고 불리는 사람이 기자회견을 했다. 장소는 그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점잖은 방송출연자들이 한결같이 고집하는 책꽂이를 배경으로 선택했다. 그의 기자회견 내용보다 책꽂이에 장식(?)되어 있는 책들이 보였다. <케네기 평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비롯해 ‘꿈’ ‘선택’ ‘리더쉽’ 등의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보였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영어로 된 책들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약간의 놀라움으로 만난 것은 그의 사무실 벽면에 걸린 <水到船浮>란 액자였다. 그는 무슨 마음에 그것을 걸었을까?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퇴장하는 모습. 벽에 ‘수도선부’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사진출처=노컷V 생중계 갈무리)


水到船浮 수도선부 vs 載舟覆舟 재주복주


수도선부(水到船浮)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물이 차오르면 배가 뜬다’는 뜻이라는 중국 송나라 주자의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실력을 쌓아서 경지에 다다르면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로 새긴다. 사실 세상사가 당연히 그런 것이다. MB는 이 사자성어를 2013년 신년사에서도 언급하고, 임기 마지막 날 현충원 참배 때도 방명록에 자신의 손으로 쓴 것으로 보면 그가 이 사자성어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 허나 MB는 배를 띄운 바로 그 물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해마다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대학교수들이 2016년에 선택한 것은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순자> 왕제편에 나오는 말로서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지만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이 그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실 그 말은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고 했던 공자의 재주복주(載舟覆舟)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공자는 “물의 위험을 생각한다면 다스림의 도리를 안다”고 그 말에 덧붙였다. 어느 시대 할 것 없이 물로 표현되는 국민이 품고 있는 숨은 하늘의 의지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신의 이름’이 아니라 ‘물의 이름’ 앞에


▲ 기자회견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출처=JTBC 영상 갈무리)


노자가 살아서 MB의 기자회견을 보았다면 “그가 물을 가지고 놀 때 알아봤다”고 탄식할 만도 하다. 22조원을 들여서 왜 만들었는지 두고두고 원망을 받는 4대강사업, 2조3천억을 들이고도 유명무실하게 된 경인아라뱃길은 어찌 보면 ‘악마의 유혹’ 같았던 한반도 대운하의 파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난 2009년 5월 경인운하 기공식에서 분명히 “뱃길이 완공되면 대한민국의 격이 새롭게 높아질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 뱃길로 지난 5년간 예상한 850여만 톤의 1%도 안 되는 7000톤이 오갔다는 보도를 보면 그가 말한 ‘국격’은 도무지 아리송할 뿐이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경인뱃길로 인해 1조원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는 내부보고서를 비롯한 보존문서를 한국수자원공사가 폐기하려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실종된 국격사건의 일각이다.


MB는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액자와 책꽂이를 배경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그에 대한 수사가 ‘정치보복’ 운운했지만 치킨집 이름과 매번 혼동되는 ‘BBK’와 양말회사 이름과 흡사한 ‘다스’는 그를 결국 무릎 꿇게 할 모양이다. 사실 그가 무릎을 꿇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2011년 3월 그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그가 믿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인 바 있다. 그러나 하늘은 이제 MB에게 ‘신의 이름’이 아니라 ‘물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명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2011년 3월 3일,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명박 대통령 부부 (사진출처=진실의길)


다시 상선약수를 되새기며


노자는 최고의 선(上善)은 물과 같다고 말한다.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첫째, 물은 만물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물은 곧 생명이다. 둘째는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 산이 가로 막으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제 몸을 나누면서 가며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다 채우고 간다. 셋째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자리를 하기에 최고의 선이라 하는 것이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이내 바다에 이른다. 모든 물을 다 ‘받아’들여서 그곳이 ‘바다’이다. 


“당신, 국민을 물로 봤어?”라고 묻고 싶지만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하는 그런 소리 없는 힘을 지닌 물이라고 MB가 알아보고 국민을 새기고 섬겼다면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MB의 사무실 벽에 걸린 수도선부(水到船浮)의 뜻을 다시 새긴다. “물이 차오르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서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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