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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가훈을 ‘정직(正直)’이라고 적은 이명박
  • 전순란
  • 등록 2018-03-14 10: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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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3일 화요일, 맑음


‘여보, 감자 주말에 원주 갔다 와서 심으면 안 돼, 꼭 오늘 심지 않고?’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면 왜 안 될까요, 난 그게 알고 싶은데요, 서방님?’ 그는 미룰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미루고 나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해 놓아야 맘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내리는 결론은 늘 ‘그럼 하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해!’가 된다. 


그렇다고 그가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힘들어 보이면 ‘저놈의 승질’ 하면서도 자기가 해 놓기도 한다. 오늘 아침도 그렇다. 아침을 먹고 슬그머니 없어졌는데, 텃밭에 내려가 보니 어제 만든 이랑에 비닐 멀칭을 혼자 하고 있다.



아마와 프로(밭갈이)



어제 보스코가 밭에서 이랑을 일구는 광경을 인규씨가 지나가며 보더니 트랙터로 밭을 갈아주겠다고 했는데도 보스코는 마다고 했단다. 큰 기계로 깊숙이 갈아엎는 게 땅에 대한 폭력 같기도 하고, 로타리를 치면 지렁이 같은 미물들의 삶도 파괴하는 것 같단다. 오늘 비닐멀칭을 하면서도 ‘비닐을 씌운 흙에는 지렁이도 안 산다’며 은근히 멀칭을 하지 말자는 얘기지만, 한여름 풀을 뽑고 돌아서면 또 솟아나 있는 풀과의 전쟁은 늘 내 몫이니, 영농에서도 이상과 현실은 결혼 전후의 남녀관계만큼이나 복잡하다.


아래 구장네 밭에서도 괭이 소리가 나기에 내려다보니 혼자서 감자골 북돋고 비닐을 씌우는 멀칭은 가히 예술이다. 그렇다고 우리 남자를 타박할 처지가 아니다, 전공이 다를 뿐! 우리 남자도 밥 먹고 그 일만 했으면 밭이랑 만들기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아니어도 패럴림픽에서라면 동메달은 딸 게다. 보스코가 비닐을 펴고 나는 가장자리를 흙으로 묻었다.



프로와 아마(비닐 멀칭) 



둘이 일하면 옆에 누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마르타 아줌마가 가끔 오르내리며 “재미지요?”라며 놀림 삼아 묻는다. 몇 년 전까지 그니도 남편과 오손도손 농사를 지었는데 경운기 사고로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었다. 소싯적에 과부가 된 단짝친구 드물댁을 찾아가 남편 생각난다 훌쩍거리면, “지랄한다! 남편이 우째 생겼던지 생각도 안 나는구만, 누구 복장 지를 일 있어!”라는 핀잔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더라는 (드물댁이 내게 귀뜸하는) 얘기.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아도 거의가 아짐들 혼자 땅 파고 농사를 짓는다. 그러니 나처럼 땅이라도 괭이질해주고 멀칭이라도 해주는 서방을 두는 것은 예삿복이 아니다.




오후에는 어제 요안나 아짐이 눈을 오려내어 재에 묻혀온 감자조각을 나 혼자서 세 두럭이나 심었다. 호미로 비닐에 구멍을 내고, 눈이 위로 오게 집어넣고, 흙으로 덮은 뒤 다시 흙을 소복이 올려준다. 


앞으로 보름쯤이면 귀여운 싹들이 쏘옥 올라와 세상구경을 하고는, 됐다 싶으면 쑥쑥 커올라 ‘하얀 감자는 하얀 꽃, 보라 감자는 보라 꽃’을 피워 존재감을 드러내고서 땅 밑으로는 식구를 올망졸망 늘려 가리라. 장마 전 줄기를 잡아 올리면 포기마다 아들 손자 며느리 호적상황이 주룩 따라 나온다.


아무튼 어둑해지기까지 감자를 다 심고, 내일 먹을 파를 한 줌 뽑아 허리를 펴고 일어나니 저녁 7시! 날이 많이 길어져 실컷 해도 아직 훤하니 여름이 나는 좋다.




저녁뉴스에 이명박 소환 문제가 주종을 이룬다.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을 못한다’니 국민성금이라도 모아줘야 할까? 7천억 부정축재를 한 전두환이 가진 돈이 29만 원이라던 능청을 본뜨나 보다.


2007년 후보 등록 때 가훈을 ‘정직(正直)’이라고 적어 상대후보 측에게서 “하도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온다”는 평을 받은 정치인 이명박. 무슨 혐의가 나와도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 하고, 도곡동 땅얘기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땅은 아닙니다!”, “다스는 누구겁니까?”라는 물음에는 “왜 나에게 묻습니까? 국민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나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2007.12)라고 맹세하던 소망교회 장로 이명박. 열여덟 가지 혐의를 쓰고서도 아직도 자기 임기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찬하며 “저와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다!”(2018.1)고 장담하는 피의자 이명박. 


애오라지 거짓말로만 살아온 듯, 어디서나 돈냄새를 맡을 줄 알아내서 ‘쥐박이’라는 별명까지 얻어 온갖 혐의를 받으며 내일 포토라인에 서서 이명박 대통령(서양에서는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사에게는 ‘전’이라는 딱지를 안 붙인다!)이 장로답게 ‘하늘에 맹세코’ 또 무슨 거짓말을 할지 궁금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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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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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8-03-17 13:55:21

    교회의 장로라는 탈을 쓰고 지금껏 국민의 혈세로 장난질을 해서 얻은 수익이 아마 수조에 이를 겁니다. 이 인간은 대통령이 아니라 친일 앞잡이였으며 동시에 국가의 곳간을 헤집은 쥐새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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