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3-11)
대한민국은 현재 사기 협잡꾼을 하나 잡아 놓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두 혀를 내두르며 그의 죄상에 찬탄에 찬탄을 거듭하고 있다. 그가 해먹은 짓은 이제 하도 인구에 회자되어 삼척동자라도 꿰뚫어 볼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짓이 한번이나 두 번에 그쳤다면 뭐 그런대로 그랬겠거니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터지는 그가 속한 무리들의 행각은 필설로 옮기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현란하고 아직 묻지도 못한 범죄도 한참 쌓여 있단다. 이런 자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국가를 대표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미 갇혀있는 다른 전직 대통령의 죄상이 아직 마무리도 안 되었는데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가 감옥 문턱에 서 있다.
요즘 SNS나 매스컴에서는 그와 관련된 뉴스에 상투적으로 나오는 유명한 연설이 있다.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 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제껏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가 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 말에 앞서 그는 자신이 감추고 있는 스스로의 죄상을 얘기 했고 그에 이어진 말이었다. 명색이 그리스도교인인 이 자는 참 대담하게도 자신을 지칭하며 위의 요한복음 말씀을 인용했다. 그야말로 악마도 성경을 인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이 실제 증거로 나와 버렸다.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에 대해 단죄를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의 흉계와 위선을 예수님께서 한마디로 일축하신 내용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관용구로 사용할 정도로 유명하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던져라
거두절미하고 이 말은 세상에 몸담고 있는 인간이라면 모두 ‘죄’가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은 있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본디 이 말은 제 3자가 해야 어울리는 말이다. 아니 예수님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할 수 있는 쉬운 말이 아니다. 본인이 자신을 가리키며 나에게 돌을 던질 자가 누구냐고 한다면 아주 어색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를 본인과 함께 한 통속으로 몰고 가는 격이 되어버린다.
이 말은 나는 죄를 지었지만, 즉 자신의 죄를 일단 인정한 꼴이 되고 그 다음에 돌을 던지는 너희들도 나와 다를 바 없다는 물귀신 작전으로 자칭 ‘보수’들이 애용하는 흔한 ‘물타기’가 되고 만다. 정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면 자신이 속한 교회의 목사님에게 부탁하여 그 말을 하게끔 했다면 모양새가 그리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음한 여인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둘러싼 군중에게 “죄 없는 분께서 먼저 저에게 돌을 던지세요” 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문가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군중들은 그의 말에 모두 열광했다. 무엇에 열광했는지는 아마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필자도 당시에 그를 믿었으니까 돈 많은 사람이 무슨 부정을 저지르겠으며 그의 경륜으로 보아 온 국민이 잘 살게 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절 5년간 그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 고 꽹과리 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을 온 국민이 넋 놓고 쳐다보았을 뿐이다. 백성들은 그의 사기 협잡질을 애써 모른 척 외면, 두둔하고 설마 그럴리야 하면서 여기 대한민국이 무슨 독재 국가도 아니고 혼자서 그렇게 다 쳐드셨을 리야 있겠냐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서야 그의 일가를 포함한 무리들이 한 짓이 하나 둘 세상에 나오는 꼴을 보며 혀를 끌끌 차봐야 괜한 허탈감만 남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언어로 바꾼 그의 용기는 전문(?)그리스도인답게 가상하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빼먹은 것이 있다. 그는 누가 돌을 던지겠냐는 말 뒤에 예수님 말씀도 자신의 말로 치환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단죄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실행을 했다면 이스라엘의 다윗 성왕처럼 대한민국 역사상 불세출의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물론 단죄하지 않았고 대통령이라는 가면을 쓴 후에는 더 많은 실정법상 ‘범죄’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는 감옥 문턱에 서서도 자신의 ‘범죄’를 전혀 알지 못하고 뇌물을 받은 것도 정치행위의 일종이라고 우긴다면 오래 전에 ‘사자후’를 토한 것처럼 온 국민을 향하여 다시 한 번 이렇게 당당히 소리쳐야 할 것이다.
누가 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