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바로 가는 정치는 국민의 축제
  • 전순란
  • 등록 2018-03-26 11:42:58
  • 수정 2018-03-26 16:05:41

기사수정


2018년 3월 23일 금요일, 맑음


마음이 참 평화롭다. 오랫동안 우리는 불합리한 사회 안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참고 견뎌 왔다. 아마 10년 전만 했어도 우리는 속을 끓이면서도 참는 삶이 잡초 같은 민초들의 숙명이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달리 변한 모습을 본다. 대통령 하나 제대로 뽑고서 하는 말이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데 “아직 나이 어리고, 판단력이 미숙하고, 학교에서 정치적 견해를 갖게 만드니까,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이 사회나 정치문제에 뛰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위 ‘교총’에 있는 꼴보 교사의 말이다.



교육이란 학생이 장차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질을 키워가는 양성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사회, 주변 이웃, 다른 나라 사람이 처한 구체 상황을 바라보고, 저 모두가 ‘정치’임에 주시하고, ‘참 시민람’답게 인류애를 갖춘 인간으로 가르쳐내야 하는데, ‘전교조’ 아닌 ‘교총’에 속하는 교사여서 젊은이는 수구세력에 투표하지 않으리라는 극히 비교육적인 수구사상만으로, 선거연령 인하에 반대하다니!


대한민국의 2017년의 6개월간. 우리네 학생들뿐 아니고 국민 전부가 광화문과 전국 광장의 ‘촛불학교’에서 집중적으로 ‘민주교육’을 받았고, 국민의 정치의식은 핵분열처럼 폭발했다.


집회마다 무대에 선 ‘어린’ 학생들의 얘기를 듣고 우리 어른들의 ‘미숙’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여는 집회에 나온 중고등학생의 발표는 우리 어른의 생각을 항상 능가했다! 


눈 딱 감고 1번에만 찍는 시골의 할메들보다는 물론이고, 저 교총 소속의 교사라는 기성세대보다 우리 고등학생들이 정치적으로 훨씬 성숙해 있다. ‘고이다 못해 썩은 물 같은’ 어른들, 시멘트벽 같은 ‘틀딱’으로 늙은 노인들이야 말로 집중적 ‘사회 교육’이 절실하다.




‘아침기도’를 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기독교 장로’(이 말 한 마디 믿고 투표했노라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라면서 온갖 도둑질을 한 것으로 조사되고서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입을 열어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를 하겠다니, 그런 기도를 참고 들으시는 하느님, 정말 대자대비하시다.


주변에서 많은 친구들이 축하 전화를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어 했다. 저 젊은 날,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우선 시간 있고 무드 있는 친구가 순서대로 뽑혀 데이트 신청을 받듯이, 이명박이 구속되자 사람들이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친구 0순위가 우리였나 보다. 보스코도 여럿에게 ‘축하전화’를 받았단다. 


503호에 뒤이어 716호를 창살 안에 가두고 나니 10년의 한을 푼 듯하단다. 나쁜 사람을 감옥으로 보냈으니 온 국민의 축제다. 리얼미터 조사대로, 국민 80%가 축제 지내는 심경이리라. 김어준 총수의 말마따나, 앞으로 싱가포르 저수지에 숨겨둔 아마도 수 조, 수십 조 장물을 찾아내는 게 다음 순서란다.




이웃 소담정 도메니카도 전화를 했기에 축하주를 나누자고 점심에 초대했다. 적어도 지난 10여년 세월에 일어난 속상했던 정치현황, 저 인간의 행악을 4시까지 성토했다. 그러고도 헤어지기가 아쉬운지, 할 얘기가 남았는지, 나랑 집 옆에서 고들빼기 민들레 나물도 뜯고 텃밭에 내려가 파와 부추를 뜯으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산속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주고받을 이웃이 있다는 게 크게 위로가 된단다.



그니가 가기도 전, 임실에 내려온 김원장님이 전화를 했기에, 축하주를 나누자고 휴천재로 초대했다. 명박이도 치우고 친구도 만나고 아무튼 기쁜 일이다. 김원장님은 야쿠르트와 치즈 그리고 우리 ‘늙은 어른이’ 치매 걸리지 말고 싸우지 말고 놀라고 ‘루미큐브’라는 게임을 사왔다. 당신이 읽고 재미있었다며 나폴리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가 쓴 책을 네 권이나 선물해 주셨다. 설레는 봄날이지만 맘 잡고 책도 읽으라는 맘씨에서 그분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저녁을 먹고서 우리 둘에게 ‘루미큐브’ 게임 방법까지 가르쳐주고 실전을 두 번 치른 다음(보스코가 언제나 꼴찌) 임실로 떠나갔다. 서편으로 별들이 초생달과 머리를 맞대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어둠 속으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며 참 행복한 밤이다. 올바로 가는 정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축제임에 틀림없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