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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제주4·3, 암흑과 망각 속에 묻어 둬선 안돼”
  • 편집국
  • 등록 2018-04-02 13: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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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한국천주교주교회의)




‘폭력과 죽음을 넘어 부활의 생명으로’ 

- 제주 4·3 70주년 기념 부활절 선언문 -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께 가득하시길 빕니다. 올해의 부활절은 예년과 달리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시기적으로 제주 4·3 70주년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로 1945년 우리 민족은 35년의 긴 일제강점기로부터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분단의 충격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를 겪으며 국민 모두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에 휩싸였습니다. 그 와중에서 제주도는 1947년부터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남북의 분단을 우려하며 5·10 단독 선거를 반대한 제주도민들은 이념갈등의 포로가 되어 냉전체제의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가혹한 무력진압을 감행함으로써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만여 명의 도민의 목숨을 앗아가고 제주의 섬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에 따른 제주도민들의 이러한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주 4·3은 제주도민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고통이고 불행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죽음과 절망을 하느님께서 생명과 희망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70주년이 된 제주 4·3도 더 이상 절망과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치유와 생명, 희망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첫째, 제주 4·3이라는 참극이 발생한 지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4·3은 우리 국민 대부분에게 오랜 세월을 두고 알려지지 않은 채 잊어진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제주 4·3을 암흑과 망각 속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실을 가리고 덮는 것은 불의와 폭력을 묵인하고 동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4·3을 돌아보며 회심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제주도민들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 상처는 세월의 흐름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제주 4·3은 제주도에서만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이 엄청난 참극을 치르고 그 자손들까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고통받게 한 국가적 재앙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오를 올바르게 청산하여야 우리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쓰러져간 불쌍한 원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유가족들에게는 정당하게 보상할 때, 민족의 화해와 통일도 합당한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4·3 7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 먼저 4·3의 올바른 진실규명과 제주도민의 명예회복을 통한 민족의 화해와 상생이 이 땅의 참된 평화의 첫 단추를 끼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내재한 모든 모순과 굴곡의 첫걸음이 4·3에서 시작되었고, 분단은 4·3의 갈등을 한반도 전체에 고착시켰기 때문입니다.


셋째, 최근에 열린 평창올림픽 이후, 우리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오랜 대결과 불신을 불식하고 신뢰와 대화를 통한 평화의 소통 관계를 구축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수난과 죽음이 내일의 진정한 평화를 낳기 위한 진통이요 산고였음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참된 화해와 상생을 성사시켜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오랜 세월 동안 풀지 못한 역사의 아픈 매듭을 하나씩 풀어야 할 것입니다. 현 정부는 4·3의 올바른 해결을 공약으로 선언한 바 있기에 그 약속이 차질 없이 순조롭게 이행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회도 지금까지의 무관심을 뉘우치고, 4·3에서 시작된 어두운 과거의 진실을 찾고 규명하며, 그 해결과 치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연대하여야 하겠습니다. 상처 입고 쓰러진 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 상처를 싸매고 위로하는 일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4·3 해결을 위한 우리의 이러한 노력과 연대가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현대사를 살아온 이 민족의 앞날에 부활의 빛살을 비추어 주기를 기원합니다.


2018년 4월 1일 주님 부활 대축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

위  원   강우일 주교

위  원   김운회 주교

위  원   정신철 주교

위  원   배기현 주교

위  원   문창우 주교

위  원   옥현진 주교

위  원   유경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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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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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cky0000002018-05-09 15:48:08

    ㅇㅇ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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