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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세월호’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 전순란
  • 등록 2018-04-18 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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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6일, 월요일 맑음


담너머 영심씨네 언덕에 핀 노랑색 개나리만 보아도 눈물이 나는 날이다. 저 꽃 같은 아이들에게 뻔뻔한 어른들은 무슨 짓을 했나? 그리고 사죄는커녕 아직도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있는 이 땅에 우리는 새 바람, 신선한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세월호는 여전히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국가적 범죄요,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독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관련글)


세월호 4주기: 국민의 마음



오늘은 종로1가에 있는 ‘공안과’로 보스코와 나 둘 다 눈을 보러 가는 날이다. 이번엔 좀 길게 서울에 머물면서 내일의 보스코 정기검진(장내시경), 모레 치과 검진과 스켈링, 그리고 오늘 안과 검사까지를 하면 올 봄은 ‘신체 보링’으로 끝난다.


10시 30분에 도착하여 늘 왼눈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보스코는 안경 도수를 올린다 해도 시력이 현저히 개선되지 않는다고, 갖가지 검사를 받고서도 백내장은 아직 수술을 받을 만큼은 아니라는 말에 “그냥 생긴 대로 살다 가세요.” 라는 진단을 받은 셈이다. 그 얘길 들은 보스코의 태도가 의외다. 자기는 수술받기 싫었는데 수술해도 안 해도 마찬가지라니 너무 기분이 좋단다. 하기야 그 나이에 저렇게나 혹사해온 눈이 녹내장, 황반변성 따위가 안 온 것만으로도 고마워 할 일이다.


세월호 4주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은 사람들


▲ (사진출처=경향신문)


그러나 나는 오른눈 난시가 심해지고 백내장도 심해 수술을 받기로 정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함양에서 수술한 왼눈은 3년 전 초보의사가 눈을 한번 들여다보고 ‘제일 무난한 게 0.8도 정도의 렌즈’라면서 바로 다음날 수술하자 해서 단돈 20만원에 수술을 했고 잘못된 후유증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오늘은 검사비만 25만원을 냈으니 수술 시에 난시조절렌즈까지 끼우면 150만 원 가량의 경비가 든다. 지리산 속에 사는 할매들이야 눈에서 갑갑하던 허연 콩껍질 벗겨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정도 가격이라면 고사리 따다 팔고, 산나물 팔고, 가을에 밤 주어 팔면 ‘포도시’ 마련할 돈이려니 하며 만족해 하니 어디가나 ‘돈 낸 만큼 해 준다’는 의사들의 철칙은 변함이 없다. 수술은 목요일 아침.


오전 내 검사를 받고 있는데 이엘리가 나 보고 싶어 왔다면서 인천에서 종로 공안과까지 찾아왔다. 자기도 힘든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의 약한 몸이면서 말이다. 진찰과 검사를 받는 내내 동무를 해주었다. 점심으로 죽집엘 갔는데 ‘돈 주고 죽 먹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직장마다 대한항공의 조전무에 대한 소문처럼 ‘분노조절장애’를 않는 상사들 밑에서 신경성 ‘소화조절장애’를 않는 사원들이 많은가 보다.



오늘 나를 담당한 안과의사는 ‘눈 수술을 하면, 무거운 것도 들지 말고 힘든 일 하지 말고 몸을 쉬라’는 주문을 하기에 ‘손님 대접도 안 되죠?’라 물으며 보스코 눈치를 보니 ‘안되죠.’ 란다. 며칠 후 집에 손님을 부른다기에 하는 말이지만 밖에서 만나는 손님도 집으로 데려와 대접을 하라는 보스코는 좀처럼 관습을 못 바꾸나 보다.


점심에도 흰죽, 저녁에도 흰죽을 간장에 먹은 보스코, 물 마시는 걸 죽기만큼 싫어하는데 내일의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물에 탄 장세척약을 1500cc나 마시며 엄살에 엄살을 거듭한다. 그를 가장 잘 설득하는 사람은 빵기. 둘 다 철학을 공부했고(서강대에서 한 사람은 교수로 하나는 학생으로) 논리적으로 하는 설득에는 논리적으로 수긍을 한다.


그제 저녁 부모가 ‘연명의료결정서’를 쓰고 왔다니까 빵기는 그 서류 이름이 ‘죽어도 연명의료는 받고 죽겠다’는 말 같다면서 놀린다. 자기 직장에서도 학대받는 아동을 위한 보호와 치유 센터를 만들고선 ‘아동학대 센터’라고 이름 짓고 심지어 거기서 이수하는 교육을 ‘아동학대 교육’이라 부르더라나? 어법에 대해 저렇게 깐깐한 건 철학을 전공해서 논리상 말귀가 안 맞으면 꼭 맘에 걸리는가 보다. 내가 철학교수 보스코에게 번번이 당하는 고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전공이 신학이라며 ‘미씀네다!’로 끝나는 말투를 쓰기 땜에, 세 남자가 아무리 이치를 따져 와도 “그래도 난 이렇게 할 거야!” 라고 결론을 지으면 더 이상 말들을 접는다. 우리 집 세 남자는 익히 알고 있다, ‘여자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 신비’라는 사실을.


2015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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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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