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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외눈박이들의 4·19
  • 전순란
  • 등록 2018-04-20 10: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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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9일 목요일, 맑음


진달래가 저리도 불타오르는데 찬란한 이 정열의 계절을 누가, 어찌하여 이토록 잔인한 계절로 기억되게 만들었는가! “4·19민주공원역입니다…” 우리가 ‘우이전철선’ 지하철을 타는 ‘솔밭공원역’ 다음이 ‘4·19민주공원역’이다. 집에서 걸어서 30분이면 가는 거리이니 자주 산보를 가서 거기 누워계신 ‘호국영령’들을 찾아뵌다. 


4·19의 아프고도 감격스러운 기억을 간직한 세대라고 해서 다 민주와 평화 정의의 뜻을 끝까지 간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곁에서 그것을 보자면 분노로 가슴이 터진다. 변함없이 당시 목숨을 바쳐 일어난 국민의 뜻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묘지에 누워있는 사람들뿐임을 문대통령의 오늘 기념행사와 분향 사진에서 새삼 느낀다. 


그래도 온건보수라던 유승민이 문대통령의 대북외교를 ‘외눈박이 역사 인식’이라고 욕하더니 오늘 4·19를 맞아 자유당 서울시장후보 김문수가 3·15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시민학생들을 학살하고 쫓겨난 이승만을 한껏 추켜세우면서 4·19를 ‘의거’로 부르는 사람들을 ‘외눈박이 역사인식’이라고 다시 폄하하였다. 기득권의 앞잡이가 되고 반공일색으로 눈이 멀면 자유당도 그 당을 지지하는 20%도, 빨갛게 충혈 된 보수언론들도 저렇게나 가련한 외눈박이들이 되는지 한심스럽다.




9시가 되기 전에 공안과에 도착했다. 간호사는 동공을 늘이는 안약을 세 번 눈에 넣어 동공의 크기가 검은 동자 전부와 같아질 때까지 늘려놓았다. 이미 예약된 환자 외에 나를 한 명 더 수술 하는 일정인지 10시 30분이 넘어서야 수술실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눈동자를 마취하니 그 위에 펜으로 +를 그려 넣는데도 통증이 없어 누구에게라도 눈알을 꺼내 빌려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수술실은 에어컨 바람과 서늘함에 공포까지 스산하여 온몸을 쪼그라들게 했다, 이 ‘인조인간 전순란 마징가 제트’를! 눈동자의 한 부분을 걷어내는 느낌, 전혀 다른 물체를 각막위에 붙이는지 꿰매는지, 비록 마취 중에도 느껴지는 깊숙한 통증… 손을 내저어 다 털어 버리고 벌떡 일어나 앉고싶은 답답함… 수술이 끝나고 에어리언 같은 눈뚜껑을 붙이고 나서니 내가 봐도 우스운 숙녀!



12시 30분에 서울에 와 계신 박수녀님을 만났는데 내 모습이 너무 선정적이었나? 오늘 보호자를 자처해준 엘리랑 박수녀님이랑 함께 점심을 들고 차를 마시면서도 워낙 유명한 공안과 근처여서인지 손님들도 식당 주인도 나 같은 얼굴 분장을 예사롭게 보아 넘긴다.


지리산 가밀라 아줌마가 몇 달 전 손녀딸 손을 잡고 진주에 가서 백내장수술을 했었다. 수술이 끝나고 손녀딸이 “할매, 눈 수술하니 잘뵈나?” “그러타 아이가?” “그럼, 우리 기분이다. 영화 보러가자,” 그래서 그 길로 극장에 들어갔단다. “그래 영화 잘 보았어요?” 내가 물었더니 “어데? 정신만 사나웠서예. 뿌옇기만 하고 하나도 안 뵈더만…” 눈 수술 막 하고 영화 보러간 80줄의 할매도 있는데, 발밑을 더듬거리며 지하철을 거듭 갈아타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일도 아니다.


지하철에서도 특히 우리 동네 시장거리에서도 내 또래 아짐들이 모두 인사를 건넨다. ‘어디서 했느냐?’ ‘잘 보이느냐?’ ‘돈은 얼마 들었느냐?’ 이 나이 여자 거의 모두의 관심사로 보이니 모두 백내장으로 세상이 희끄무레해지는 처지라는 말이겠다. 영심씨에게 들렸더니 빵기 와 있다는 말에 먹음직한 족발을 사주며 먹이란다. 역시 엄마들의 마음 씀씀이가 크고 넓다.


보스코는 집에 남아 혼자서 점심을 차려먹고 오후에 서대문에서 열리는 ‘자성과 실천 종교연대’라는 종교정화 운동 회합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얼마 전 귀국한 정대사를 만나 저녁을 나누고 귀가하였다. 수년전 맹장이 터지고도 내 차로 내가 운전해 가서 수술받은 경험으로 남편의 동반과 대기를 기대도 안했지만 아무리 운전을 못한다 해도, 보호자가 따로 있으니 따라오지 말라고 내 입으로 말했다 해도 왠지 좀 그랬다. 



엄마의 눈 수술이라는 ‘큰일’을 두고 우리 아들 둘만 인사가 없기에 내가 좀 갈궜다. ‘느그들이 딸이었으면 날 병원에 데리고 가고 수술실에 따라 들어오고, 아니면 수술 어찌 되었냐 전화라도 했을 게다! 엄마 삐졌으니 그리 알아!’ 했더니 작은아들이 케이크를 사들고 밤에 깜짝 방문을 했다. 내일 인천 가톨릭대에 강연을 하러 제주에서 올라온 길이란다. 며느리의 안부전화도 멀리서 왔다. 옆구리를 찔러 절 받는 처지이지만 ‘수술축하’인지 23일을 앞당긴 생일축하인지 모르지만 아들들이 사온 케이크를 맛있게 들면서 흡족키만 한 밤이다. “아들들이 그렇게 좋아?” 보스코가 놀린다. “그래! 그게, 어때서?”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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