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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이시돌목장 세운 임피제 신부 제주서 잠들어
  • 문미정
  • 등록 2018-04-24 11:38:28
  • 수정 2018-04-25 13: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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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제(본명 패트릭 J.맥그린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 ⓒ 가톨릭프레스DB


4·3과 한국전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제주도에서 목축업과 복지사업을 시작한 ‘돼지 신부’ 임피제(본명 패트릭 J.맥글린치 Patrick James McGlinchey,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가 23일 오후 향년 9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임피제 신부는 최근 심근경색과 신부전증 등 건강이 악화돼 제주 한라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예수는 신부님께 어떤 분입니까?”라는 물음에 “저는 누구를 가르치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답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관련기사)


아일랜드 출신 임피제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1953년 25살 나이에 한국으로 왔고 이듬해 처음 제주도 땅을 밟았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4·3과 한국전쟁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임피제 신부는 가난한 제주도민들을 위해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를 데려와 사육을 시작해 ‘돼지 신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 사육은 훗날 우리나라 최대 목장인 성 이시돌 목장으로 성장한다. 


▲ 1970년대 이시돌 목장에서 양들을 방목하고 키우던 장면 (사진출처=해외문화홍보원)


또한 1,300명의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한림수직을 세웠고, 제주 최초로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임피제 신부는 사업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받은 상과 상패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사업가 신부로서의 삶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물질적 가난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1970년 성 이시돌 복지의원을 개원해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시작했고 2002년에는 호스피스 병동을 중심으로 다시 개원해 가난한 말기 암 환자와 요양이 필요한 무의탁 환자들을 돌봤다. 


지난해 2월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에 참석한 임피제 신부는 “호스피스 병원은 제주도민들이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서 후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가난을 벗어나지 않으면 하느님께 다가설 수 없다’는 신념으로 임피제 신부는 60여 년 동안 제주도민들이 가난에서 해방되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헌신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에는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았고, 1975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등을 받기도 했다. 


임피제 신부의 빈소는 천주교제주교구 한림성당에 마련됐으며, 27일 오전 10시 제주 성 이시돌 목장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된다. 이후 성 이시돌 목장 글라라 수녀원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빈소 안내


▲ (사진제공=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제주

빈소 : 한림성당

장례미사 : 성 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 

- 4월 27일 오전 10시

장지 : 성 이시돌 목장 내 글라라 수녀회 묘지


○ 서울

분향소 : 골롬반회 본부 1층 성당 

- 4월 24일(화)~26일(목)  

  오전 10시~밤 8시

추모미사 : 서울 골롬반회 본부 

- 4월 30일(월) 오후 4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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