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17년 4월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사목헌장』 제1부는 정치-세속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룬다. 즉, 인간에 대한 교회의 소명이 무엇인지 밝힌다.
교회는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대사회 건설에 무엇을 권고해야 할 것인가? 세상에서의 인간 활동은 무슨 궁극적 뜻을 지니고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답이 있어야 하겠다. 여기에 해답을 줌으로써 인류와 그 속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 서로 봉사한다는 것이 더 명백히 드러날 것이고 교회의 사명이 종교적이며 따라서 극히 인간적임이 명백해 질 것이다. (『사목헌장』, 11항)
신앙이 세속주의 문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없다면 세속주의에 대한 교회의 비판은 공허하거나 위선일 위험이 있다. 하느님에 대한 부정보다 하느님에 대한 왜곡이 더 문제다.
현대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물질적 쾌락을 지향하도록 만들고, 무신론적이고 탈종교적이며, 합리적이고 진화론적 특성을 지니는 과학적 세계관의 문화다. 따라서 현대 문화는 사람들을 이기적이고 지독한 현세주의자로, 기능성과 유용성만을 강조하는 기계적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문화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 문화는 사람들에게 물질의 중요성과 거룩함을 깨닫게 해 줄 수도 있으며, 지금 자리하고 있는 현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줄 수도 있고, 자연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 줄 수도 있다. 따라서 건강한 세속화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강생(Incarnation)은 세속화의 건강한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사목헌장』 2부는 교회의 눈으로 정치-세속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교회는 우리 시대의 곤궁함을 영적인 문제로 다룬다는 것이다.
공의회는 먼저 인간(인격)의 존엄성이 어떠하며 또 인간은 우주 안에서 개인적 내지 사회적으로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불리었는가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이제는 복음의 빛과 인간이 얻은 경험의 빛을 받아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의 몇 가지 긴급한 과제에 모든 사람의 관심을 모으고자 한다. 오늘날 일반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많은 과제 중에서 특히 혼인과 가정, 문화, 경제, 사회, 정치생활, 민족 간의 가족적 유대와 평화를 들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원리와 빛을 명백히 보여줌으로써 이 복잡다난한 문제들의 해결을 찾는 데 신자들을 지도하고 모든 사람들을 밝혀주고자 하는 바이다. (『사목헌장』 46항) 신앙 토착화의 도전 [68-70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문제는 곧 신의 문제이며, 신의 문제가 곧 인간의 문제라고 보았다. 교황은 하느님의 이미지대로 창조된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첫 번째이며 다른 모든 관계의 토대가 ‘부부관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오늘날 ‘성의 상업화’는 모바일 인터넷 등 정보기술 발전에 따라 더욱 기승을 부린다. 나이 구분 없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TV방송에서도 성적인 상상을 이용하는 ‘무의식적 유혹’이 판을 친다. 자동차 선전을 위해서는 어김없이 실오라기를 걸친 여성이 등장하고, 음료수 광고마다 섹시한 몸매를 과시하는 선전문구가 표현된다. 인간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며 포장에만 급급한 이러한 세태 뒤에는 극단적 상업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쉽사리 수그러들 사회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전 우리나라 성매매 시장 규모는 농림업 비율과 맞먹는 GDP 4.1% 수준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포르노물을 비롯해 몰래카메라와 셀프카메라, 원조교제 등도 모두 ‘돈’이 배경이 됐다. ‘성’을 소재로 한 각종 유료 콘텐츠들도 나날이 늘어간다. 성의 상품화를 단순히 넘겨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성의식의 왜곡과 성윤리 부재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에 민감한 청소년들은 자극적인 요소들을 담은 상업주의에 여과 없이 노출 돼 있다. 성 상업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이 필수적이다. 성을 단순히 쾌락의 도구로, 상품으로 내세우는 잘못된 사회문화적 환경은 성의식에 심각한 폐해를 끼친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성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고 ‘성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 안에서 가정교육을 담당하는 부모의 역할은 큰 몫을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부모가 가정 밖에서 이뤄지는 자녀에 대한 비도덕적이거나 부적절한 교육을 묵인한다면 이 역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명확히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성 상업주의 앞에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그저 상대적인 가치 기준으로만 받아들여져 가는 현실이다.
그리스도교 평신도 마가렛 생어 Margaret Sanger (1883.9.14.~1966.9.6)는 자기 몸을 소유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격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인간발전을 위해서 ‘인공피임’이 필수적이라고 외치면서 ‘피임약’ 개발과 보급에 열중하다 세상을 떠났다. 또한 동시대를 살았던 카롤 보이티야(요한 바오로 2세 교황)는 인간발전을 위해 ‘몸의 신학’을 발전시키며 ‘자연피임’이 필수라고 가르쳤다.
가정은 심각한 문화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모든 공동체와 사회적 유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경우 이 유대의 약화는 더욱 심각합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세포이며, 서로의 차이 속에서 서로에게 속한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혼인은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질 수 있으며, 마음먹기에 따라 수정할 수 있는 단순한 감정적 만족의 형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이 사회에 미치는 공헌은 부부의 감정과 일시적 필요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66항)
18세기에 이르러 세계는 본격적인 산업혁명의 시기를 맞이한다. 이때 나온 놀라온 학설이 바로 영국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798)』이었다.
영국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던 맬서스는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정) 수준을 넘어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의 사망에 의해 여유가 생기지 않는 한 반드시 죽어야 한다. (…) 도시의 거리는 더 좁게 만들고, 집집마다 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고, 전염병이 잘 돌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의 영국 빈민층은 어린 자식을 마약에 취해 죽도록 만들기도 하고, 영유아 유기 등 자신들의 경제능력으로 기를 수 없는 아이들을 살해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1883년 마거릿 생어는 미국의 뉴욕 동부 코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이민으로 석수장이였지만 급진적 자유주의자였고, 그의 어머니 안나는 가톨릭신자였다. 생어의 어머니 안나는 11명의 아이를 낳고 마거릿이 16살 되던 해 폐결핵으로 죽었다. 마거릿 생어는 어려서부터 여성이 자신 육체의 주인일 수 없는 현실과 수많은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방치된 가운데 죽거나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현실을 목격하며 성장한다. 처음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나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보건간호사가 되었다. 1900년 건축기사인 윌리엄 생어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인간이 출산이라는 자연 현상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고, 현재까지 논란 속에 휩싸여 있다. 앞서 말한 맬서스의 경우에는 산아제한을 위해 금욕적인 방법(목사 출신 지주 계급인 맬서스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빈곤층에 한한 이야기 이지만) 혹은 빈곤 계층의 늦은 결혼(사실상 결혼제한) 등의 방법을 추천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피임기구와 피임약들이 발명되기에 이르렀고, 산아제한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맬서스리그’ 같은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축적된 지식과 기술의 진보는 대개 유한계급의 손에서만 맴돌았고, 일반 대중 은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거릿 생어는 이것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하기 시작했고, 산아제한을 여성의 인권(인간화)이란 관점에서 주창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사실 한 처음 하느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실 때부터 몸의 신학은 시작되었다. 그 핵심은 인간적 사랑의 표현이 몸을 통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인간의 몸은 사랑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 중요한 장소요,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부사랑은 그 결실이며 풍성한 사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 가톨릭 신자 가운데 부부행위에서 피임문제로 고민하는 흔적은 거의 볼 수 없으며, 인공피임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거나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신자도 많지 않다.
또한 이런 문제를 정작 설명하거나 가르치는 사목자도 많지 않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문제에 대해 ‘반대한다’는 공허한 대답만 한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은 만 못하게 된다. 현대의 과학과 당사자들의 의견이 생명존중에 대한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부부의 삶을 살지 않고 윤리 문제를 다루는 독신 사제들과 교회가 그것을 금지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단죄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부터 “부부행위가 부부사랑의 표현인지 자녀출산인지”하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인간생명> 발표 직후 찰스 쿠란 (Charles E. curran) 등 신학자들은 인공피임을 단죄한 회칙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여러 나라 주교단은 자신들의 고유한 사목권한을 언급하며 부부 성생활에 대한 너무 엄격한 적용을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인간생명>을 근거로 전개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몸의 신학’에 대한 출발과 과정을 조금 더 면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인공피임을 ‘본질적 악’이라 하는 윤리신학자들 또는 회칙 <인간생명>에서 인공피임을 ‘내재적 악’이라 표현한 부분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사목적 적용을 위한 신학의 발전은 계시진리를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전달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만으로는 이 시대의 가톨릭교회를 운영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충분히 평가 받지 못했던 인간의 몸이 부각되는 데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용기 있는 신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히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혼인을 통한 부부애를 강조하였으며, ‘혼인목적 서열론’을 사라지게 했는데, 이는 헐버트 돔즈(Herbert Doms)라는 신학자의 공로가 컸다. 헐버트 돔즈는 1935년 『혼인의 목적과 의미』를 출간해, “혼인에서 자녀생산이 제1목적이 아니라 부부의 대인격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며 온전한 몸을 부각시켰다. 그는 1944년 교황청 검사성성의 단죄를 받았지만, 그의 입장은 그 후 숱한 논의를 거쳐 공의회에 받아들여졌다. 1917년의 교회 법전에는 “혼인의 제1목적은 자녀출산과 양육이며, 제2목적은 부부간의 상호 부조와 정욕의 진화이다”라고 규정했으나, 1983년 법전에서는 이 서열규정이 사라진 것이다.
성적 욕구는 영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천이 된다. 진정으로 살아가고, 진정으로 사랑하도록 시도해야 한다. 교회가 만일 성적 활력 또는 성욕을 억압 하려고만 한다면 오히려 신자들은 자신에게 사로잡혀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올바르고 정확하기만 한 삶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 안에는 삶과 사랑에 대한 강한 동경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