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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휴천재를 찾아오는 새들
  • 전순란
  • 등록 2018-05-16 10: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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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4일 월요일, 맑음


이층 거실 앞으로 아랫동네에서 휴천재까지 끌어올린 전화선이 있다. 앞산을 바라보거나 마당에서 먼 산을 보면 멋진 한 폭의 산수화에 흉하게 죽 그어 놓은 한 가닥 전선이 늘 떨떠름하고 특히 원경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에는 참 보기 싫다.


나는 서울집 골목의 다세대 주택가 전선과 전화선과 케이블티브이선이 얽히고설킨 풍경이 눈에 익어 그러려니 하지만 보스코는 전선을 땅속에 묻지 못하고 저 모든 선이 허공에 허우적거리는 야만에 치를 떤다. 그의 숙원사업은 휴천재 마당의 전화선을 땅에다 묻는 일이다.


현관 신발장에 둥지를 튼 딱새 


동네 깡패새 물까치


며칠 전 자태를 보인 파랑새


그런 그에게도 고상한 취미가 하나 있다. 거실 창문에서 그 전기줄에 앉는 새를 바라보는 일이다. 며칠 전엔 파랑새 가족 세 마리가 나란히 앉아 가족회의를 했고, 아래층 현관 신발장 위에 신접살림을 꾸미고 새끼 먹이느라 부지런히 드나드는 딱새 부부가 전깃줄에 앉아 쉬면서 사람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도 한다. 감동에 둥지를 마련하던 개똥지빠귀나 찌르레기, 특히 이 동네의 제일가는 깡패 물까치는 줄 위에 떼지어 앉기도 한다. 『우리나라 새』라는 두툼한 책을 펴 보이며 그 줄 위에서 보이는 새들의 행태를 나에게 열심히 설명도 한다.


오늘은 까치가 줄 위에서 쉬고 있는데 까치 몸피의 반밖에 안 돼는 물까치가 번갈아가며 까치에게 위협비행을 하더란다. 이 봄이 가기 전 저 줄을 땅 속으로 묻겠다던 마음이 엷어지고, 저 전깃줄 없으면 새들을 코앞에서 볼 수 없으니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무엇에 애정을 갖게 되면 약간의 불편은 견뎌야 한다. 역시 사랑의 힘은 크다, 비록 미물을 향한 것이라도…


이번에 제주 가며 기내에 핸들링한 가방바닥에 손칼이 들어있어 표 받던 아가씨에게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찾겠다 했는데 깜빡 잊었더니 고맙게도 그 칼을 지리산까지 보내왔다. 그것도 착불로! 칼 값은 2천원도 안 드는데 택배비는 3,500원. 정신없는 아줌마가 제주항공의 친절에 우선 감사드린다. 그 칼은 작년 여름 내내 유럽여행을 하며 기내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이번에 알아낸 게 의아하다. 칼을 당당히 넣고 다녔으니 정작 속이려 작정하면 검색기도 눈감아주나 보다.


감동에 둥지를 마련중인 찌르레기


작년 손님 직박구리


논갈이를 하는 휴천재 옆논으로 날아오는 황새 


IS가 로마 바티칸을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이탈리아 유명한 대성당마다 장갑차가 서고 특전단 병사가 중무장을 하고서 심하게 몸수색을 한다. 몇 해 전엔 빵고가 밀라노 대성당에 들어가다 가방에 있던 스위스 칼이 걸렸다. 성당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사제도 안 봐준다. 그때는 너무하다 싶었는데 오늘 인도네시아에서 8세 여아를 낀 한 가족이 성당과 교회와 경찰서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렸다는 뉴스를 듣고는 이슬람 세계에 감도는 ‘최악의 절망’을 본다.


미국이 이슬람 세계 전부를 차례차례 침략하여 폐허로 만들고, 심지어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데 항의하는 이슬람을 모조리 쏴 죽이는 오만과 학살을 보면서, 팔레스타인들이 항의할 최후의 무기가 몸밖에, 자기 생명밖에 없는 처절한 절망을 본다. 저 모든 침략전쟁과 학살을 ‘정의의 십자군’이라 부르는 그리스도교세계의 횡포 앞에서 가톨릭성당들이 자살폭탄의 표적이 되었다니 더욱 슬픈 일이다.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세계의 가장 큰 두 종교가 증오와 학살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집단으로 변했으니…


휴천재마당엔 작약이 한창 



지난 달 수술한 눈에 넣어온 안약이 떨어져 가는데 그만 넣을지 눈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볼 겸 읍내 안과의원엘 갔다. 내 앞에 서너 명 노인이 앉았는데 모두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할매들. 선생님이 기껏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다 돌아와 또 묻기를 반복한다. 젊은 의사선생의 인내가 갸륵하다. 너덧 번 묻고 너덧 번 설명하다 지친 의사는 “할머니,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시니까 며느리나 따님하고 함께 오셔요”란다.


내가 서울에서 오른 눈을 수술하면서는 검사료만도 25만원 들었는데, 수술비 전체에 20만원도 못 받는 시골에서 고생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실력이 있느니 없느니 타박을 할 게 아니고, 이 시골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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