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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판문점이 “멀다고 하문 안되갔구만!”
  • 전순란
  • 등록 2018-05-28 10: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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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7일 일요일, 흐림


“멀다고 하문 안되갔구만!” 트럼프의 직격탄을 맞고 제일 먼저 떠올렸던 사람이 혈육 같이 따뜻하고 진솔한 문 대통령이었을 거다. 어제 빵고신부가 자기네를 재정적으로 좀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엄마였다’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엄마가 있어 든든하고 좋다고 했다. 제주에서 소년의 집 하나를 운영하는 빵고신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나이면서 저 복잡한 북한 체제의 그 어렵고 경직된 세계에서 가난한 인민을 이끌어야 한다는 짐이 정은이의 두 어깨를 얼마나 짓눌렀을까?




“삼촌 너무 힘듭네다. 좀 도와주시라요!” 했을 테고 그 말에 한걸음에 달려가 준 ‘우리 인이’! 그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기에 문대통령의 말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나를 두고 보스코가 빙긋 웃는다. “여보, 저 남자 내가 이렇게 좋아해도 돼?” “응, 돼.” “질투 나지 않아?” “안나, 나도 좋아하는 걸.”


주일 보러 공소에 들어서는데 작년 성탄에 영세를 받은 부면장댁(안젤라)이 나를 불러 세운다. “사모님, 기도책 어딜 어떻게 읽고 따라가야 하는지 나 좀 갈켜 줘요.”


부면장님은 오랜 기간 투병하다 보스코의 주선으로 마지막에 대세를 받고 떠나셨고 작은 아들네는 손주가 복사를 설 정도로 열심한 교우여서, 임실댁은 그 뒤 함양성당에서 6개월간 교리를 받고 영세를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종교에 귀의하였다지만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만 겨우 외워 세례를 받았으므로, ‘공소예절’은 어디를 어떻게 따라 하는 줄도 모르는데 그니의 그런 사정에 누구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니! 순간, ‘불친절한 A/S’라는 말이 떠오르며 ‘개신교에 다녔으면 안 그랬을 텐데…’ 자책을 했다. 천주교는 참 불친절한 종교다! 그니의 이웃도 모두 초등학교 문턱도 안 넘어본 아짐들이니 한글이라도 깨친 내가 몇 주 동안 옆에 앉아 길동무를 해줘야겠다.



이웃 동네 살던 동섭씨 아들이 오늘 읍에서 장가를 간단다. 진이네와 인연이 되어 그 집에 초대받아 ‘마천오석’ 불판에 삼겹살을 굽고, 지글지글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에 김치와 밥을 볶아 맛나게도 먹기도 했었다. 마당에 놓아먹이던 토종닭은 자기가 새인지 닭인지 정체성을 잊고 수백 미타를 날아다니느라 기운을 다 빼, 달걀인지 메추리알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자그마한 알을 낳곤 했다. 식사 후 그 집에서 돌아올 때는 그런 알을 몇 개씩 얻어왔는데 진노랑 노른자가 흰자보다 더 크고 고소한 계란이었다. 20여 년 전 얘기다.


그땐 위아래, 옆동네 할 것 없이 이 골짜기 사는 젊은이들이 원주민 귀농인할 것 없이 모두 모여 문정초등학교(아직 폐교 전) 운동장에서 주말이면 축구시합을 하고 그들의 젊은 아낙들은 교정 아름드리 벚나무 그늘에서 밥을 해서 함께 먹으며 우애를 쌓았다.


해마다 모심을 무렵 휴천재(옆 논)를 찾아오는 두루미




그러다 정부의 저리융자와 군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서로 연대보증을 해주면서 타먹더니 누군 지인 몫까지 갚느라 생고생을 하고 누군 떼먹고서 야반도주하고… 그렇게 농어촌 청년들을 돕는다던 정부보조금이 농어촌 청년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데는 10년도 안 걸렸다. 시골에서 낭만적으로 살려던 꿈쟁이든 부농을 꿈꾸던 일쟁이든 힘들기는 마찬가지여서 견디다 못해 도시 빈민으로 돌아간 사람이 대부분이고 ‘신용불량자‘까지 되면서, 진이네처럼 이웃의 빚까지 대신 갚으면서 그래도 남아서 터를 잡은 사람은 몇 안 된다.


그런데 그 중 아직도 우정을 이어가며 꿀벌처럼 일하는 우리 아랫집이나 오늘 혼사를 맞는 그집을 보면 시련과 고통 속에 여문 열매는 더 단단하고 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당시 초딩 꼬맹이던 아이가 새신랑이 되어 어엿한 애아빠가 된다니… 우리 큰아들도 오늘이 생일이다. 그러고 보니 마흔다섯의 ‘아범’이다.



오후 2시 30분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언제 와도 낯선 도시. 아무도 알 수 없는 타인들의 도시. 오직 하나 괜찮은 건 익명성의 자유랄까…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성수역에서 신설동 지선으로 갈아타고, 신설동에서 우이 신설전철로 갈아타고 솔밭공원 앞에서 하차하면 70년대 시장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익숙한 가게주인들과 낯익은 동네사람들을 만나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제5대 집사 구총각이 기다리다 대문을 열어주는데 ‘빵기네집’ 마당은 그 새 밀림이 되어 있다, 호랭이가 새끼치게…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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