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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학벌 좋고 돈 좀 있고 한자리 한데다 ‘기독교’까지 붙으면 최악!”에도 예외는 있다!
  • 전순란
  • 등록 2018-05-30 15:12:35
  • 수정 2018-05-30 15: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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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9일 화요일, 맑음


보스코가 이틀째 배를 솎고 있다. 올해 아니면 내년까지 노력을 해 본 뒤 계속 배농사를 지을지 포기할지 결정할 모양이다. 기후가 변하여 그러는지, 작년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수확할 시기를 놓친 건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서른 그루의 나무에서 단 한개도 거둘 수 없었다는 건 ‘배나무들의 반역’이다. 올해 배꽃이 피는 중에 눈이 내려 냉해를 입었던지 솎을 배도 별로 없어 편하기는 하지만 서운하단다. 봉지는 300개 정도만 싸면 된다니 한 그루에 열 개라! 그래도 해야 되든 게 농사다.




혼자 일하려니 심심했는지 배나무 밑에서 지난번 수녀님들이 베어가고 나서 신선초는 힘차게 되자라 오르는데 어성초는 잡초에 짓눌려 기를 못 편다고 풀 좀 뽑아 주란다. 어성초의 비린내가 수돗가에서 생선손질할 때보다 더 심하다. 그래도 여린 새싹까지 다 일으켜 줬으니 두어 주일이면 웬만한 풀도 해볼 만한 튼튼한 몸이 되겠지. ‘보살핌’, 그리고 ‘살림’은 역시 여자의 몫이다.




내게 친구가 하나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명문대 약대를 나오고도 한목사가 총무로 있던 '여신학자협의회' 회원이 되고 싶어 적지 않은 나이에 집안살림을 하며 신학대학원엘 갔다. 그런데 ‘여신협’ 모든 활동에 시어머니와 함께 왔고, 그분은 우리 회원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다. 우리가 연수회를 떠나도 함께 가서 주무시며 큰언니로서 당신 자리를 지키셔서 우린 모두 친구의 어머니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가족 모두가 슬퍼하는 모습이 없이 잠깐 이웃동네 마실가셨다 곧 돌아오실듯한 따뜻한 장례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내 친구가 아들 얘기를 할 때는 ‘서울대 다니는 애가 매일 홍대입구에서 노래에 미쳐 다녀 다들 홍대생인줄들 안다’는 탄식이었다. 그 아들이 법대를 졸업하기 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거쳐 판사가 되자 집안에 판사가 넷이나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들이 판사생활이 재미없다고 변호사 개업을 했단다. 그런데 부자들, 대기업의 염치없는 변론만 하자니 그 맑은 영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외삼촌은 만나기만 하면 ‘인권변호사’를 하라고, 돈은 안 되지만 보람은 있다고 채근했단다. 그러자 그 착한 아들이 이왕 사람을 구하려면 영혼을 구하기로 맘먹고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이 서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단다. 엄마의 가치관으로 보아 힘든 결단도 아니었을 게다.


그니의 오빠 역시 서울의대를 나와서는 ‘돈만 버느라 의사 되는 건 죄악!’이라 생각한단다. 재활의학을 하면서 장애자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드디어 보람을 찾더란다. 북한에 수액 공장이 서도록 돕고, 통일과 인권을 위한 일도 무척 열심이란다. 


보스코가 대사로 있을 때 만난 그 오빠는 젊었을 적에 보스코가 번역한 「해방신학」을 읽고 공부했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그런 심성의 외삼촌이니 조카가 약자와 소수자를 변론(거의 공짜로)해주는 변호사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일러줄 만하다. “학벌 좋고 돈 좀 있고 한자리 했다는 자들의 보수 꼴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데다 ‘기독교’까지 붙으면 최악이야!”라던  말에도 이런 예외가 있다니! 



오늘 저녁 보스코와 JTBC뉴스를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북한 언론에서 미국 트럼프에 대한 호칭이 변해온 역사가 나왔다. 작년에 트럼프는 ‘인간 오작품(人間誤作品)’, ‘미치광이’였다, 금년초엔 ‘미집권자’, 3월엔 ‘미국 대통령’, 그리고 오늘은 ‘미국 대통령 중에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 이렇게 잘해준 인물은 일찌기없었다!’ 라는 평이 실렸단다.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유배간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온다. 그 20일간 프랑스 최대 일간지 '모니퇴르'(Le Moniteur)의 탑기사 제목들은 이렇게 변하더란다. '악마, 유형지 탈출' → '코르시카 출신의 늑대, 칸에 상륙' → '맹호, 가프에 나타나다' → '전제황제 리용에 진입' → '보나파르트는 북방으로 진격 중' → '나폴레옹은 내일 파리로' → '황제 퐁테느브로에' → '황제 폐하 어젯밤 취일리 궁전에 도착!’


▲ 옆논에 구장이 모를 심으면 휴천재에는 커다란 물잔디밭이 생긴다. ⓒ전순란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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