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성만 열사 30주기와 더불어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의인들을 기억하는 미사가 31일 오후 7시 서울 명동주교좌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천주교 신자였던 조성만 열사의 추모미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명동성당에서 봉헌됐다.
조성만 열사는 1988년 5월 15일 당시 스물네살의 나이로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반대,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등을 염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할복하고 투신했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이유로 천주교식 장례미사를 치르지 못했었다.
30년 만에 명동대성전에서 봉헌된 이날 미사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유경촌 주교가 주례했으며, 조성만 열사의 가족들, 고등학교 동창들과 서울대학교 동문들, 당시 명동성당청년단체연합회 회원 등이 함께했다.
유경촌 주교는 강론에서, 우리가 오늘날 이정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지난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 덕분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깨질 수 있다.
유 주교는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를 가꾸고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 한다”면서 희생자들에게 빚 진 마음으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성만 열사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이웃에 대한 무관심에 중독된 소시민의 삶을 거부했다. 고인의 자세는 남은 우리들에게 하나의 도전이다.
유 주교는 조성만 열사의 삶을 보며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고 살고자 애쓴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조성만 열사의 아버지 조찬배 씨는 미사에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현재 교수가 된 조성만 열사의 서울대학교 동문이 1985년 12월 30일에 조성만 열사가 쓴 편지를 30여 년간 보관하다가 전해줬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렸다.
태양 아래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코헬렛 1, 3-4)
조찬배 씨는 항상 성경구절을 묵상하며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고민한다면서 “그동안은 우울했고 암울한 세상을 살았지만 30년이 된 (올)해부터는 웃고 즐겁게 살 것”이라는 다짐을 전했다.
미사가 끝난 후 조성만 열사가 투신했던 자리에서 촛불을 켜고 7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추모식을 가졌다. 당시 명동성당 청년단체 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조성만 열사와 함께 활동했던 청년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도 함께 했다. 그는 “조성만 열사 죽음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순교자들과 맥을 닿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순교자들이 있었다면 오늘날은 그 순교자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서 교회가 이루어지고 사회가 아름답고 밝게 되어간다는 말이었다.
순교자들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낮은 신분이든 높은 신분이든 한 형제가 되려고 노력했고 우리나라를 변화시켰다.
조광 위원장은 또, “조성만 열사는 당시 가장 큰 주제였던 광주 민중항쟁을 넘어 통일을 논했다”면서 “모든 일의 원천이 분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 광주의 슬픔을 돕는 궁극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바람대로 앞으로 우리나라에 봄이 올 수도 있다. 우리는 그가 갖고 있던 바람과 희망을 키워 나가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추모사업회는 조성만 열사의 30주기를 추모하며 특별히 오는 9월에는 ‘한반도 평화와 조성만’(가제)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평화콘서트와 조성만 다큐멘터리 등을 기획하고 있다. 추모사업위원회는 이 기간 동안 추모위원을 계속해서 모집하고 있으며 조성만.kr에서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