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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남북간 평화는 우리에게 이토록 절실한데…
  • 전순란
  • 등록 2018-06-04 1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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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일 일요일, 맑음


우리 동네 바로 옆에는 ‘백연마을’이 있는데 고려말의 인물 이백년(李百年)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한다. 그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면 백연마을에서도 ‘견불동(見佛洞)’이라고 부른다. 맞은 편 산, 곧 우리 동네에서 바라보는 주산 와불산(臥佛山)의 봉우리를 그 동네에서 바라보면 부처님의 누운 얼굴이어서 부처님을 바라보는 동네라고 한다.


몇 해 전 눈이 막 녹기 시작 한 3월 중순쯤 그 동네를 차로 올라가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차가 뒤로 뒤집힐 것 같아 그 뒤로 다시는 올라가려는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오늘 공소에 온 견불동 아줌마는 ‘처음 두어 번이 무섭지 서너 번만 오르내리면 그런 공포심이 싹 사라진다.’고 하였다. 더구나 그 동네에서 부처님을 날마다 건너다 볼 수 있어 장관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산꼭대기로 올라가 터를 잡는 동네가 많지 않다. 산이 좋아도 다들 산발치에 다소곳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룬다. 다만 우리 주변에서 사귀는 사람들은 거의 ‘귀농(歸農)’했거나 ‘귀촌(歸村)’한 사람들이어서 시골로 내려와 집터를 잡을 때 취향에 따라, 산으로 올라가 외따로 집터를 닦거나 마을에 자리 잡고 이웃과 부비며 살거나 한다.


도시생활을 과감히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오는 사람들이어서 각기 사연이 있고 개성이 강해서 오랫동안 함께 어우러지기 쉽지 않다. 말하자면 생긴 대로 맘 편히 살겠다는 사람들이다.


견불동에서 건너다보는 와불산 부처님 



보스코는 요즘 새들이 휴천재 부근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고 새끼를 먹이는 새들을 관찰하며 필이 꽂이더니 이젠 새집을 지어 휴천재 이곳저곳에 달겠다며 인터넷을 뒤진다. ‘새집목수 이대우’라는 분을 찾아내어 통화를 하더니만 다음 주 주문진성당에 강연하러 가는 길에 홍천에 들러 그분이 만든 새집 전시회도 보고 새집도 몇 개 사오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새집목수가 책도 펴냈다니 새집 짓는 방법을 이사야가 배워 ‘새집장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솜씨도 좋고 혼자 놀기가 취미여서 ‘팔보식품’ 사장님의 취미생활에는 적격이라는 생각이다. 홍천 가면 이사야한테 새집 짓는 책을 사와야겠다.


오늘은 엘레나 페란테의 연작 가운데 둘째 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종일 읽었다. 400페이지 이상을 읽었더니만 글자가 가물거려 안 보인다. 예전에는 도스토옙스키를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읽어도 끄떡없었는데… 눈을 비비며 한물 간 ‘전순란의 전성시대’를 실감한다.


스물을 막 넘긴, 소설의 주인공 릴라가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하는 한 대목. “그런 나와는 달리 릴라는 뭔가 갈망할 줄 알았다. 원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취할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서 모멸감도 비웃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흠씬 두들겨 맞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릴라에게 사랑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만이 사랑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걸 뼈아프게 느끼던 젊은 날이 있었는데…


아깝다. 홍준표가 계속 자한당 선거운동에 지지유세를 다녀야 하는데… 자기가 누굴 지지한다는 게 그 후보한테 무슨 의미인지를, 왜 후보마다 ‘홍대표 패싱’을 하면서 대표가 지원유세만 오면 딴데로 도망가버리는지 알아버렸으니… 그가 한반도의 화해무드에 막말과 독설과 저주를 퍼부으면서 보수꼴통들에게 ‘쭈쭈쭈’로 자위를 해주지만 건실한 일반국민은 그가 연설하는 앞에서 대놓고 자동차경적을 울리며 비웃어 왔는데… 아깝다. 그가 민주당 선거를 도울 또 다른 방도를 찾아내기를 기대해 본다.



해 넘어가는 시간에 테라스에서 저녁기도를 하면서 우리 둘이 바치는 신자들의 기도 끝 지향은 늘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세계평화를 도모하고 한반도의 대화를 격려해 주시기를…’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님이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성사시키기를(나아가서 북한과도)…’ ‘새로 온 교황대사가 한국교회에서 양편의 소리를 듣기를…’ 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절박하게 남북의 평화를 비는지 새삼 알았다. 물론 두 아들, 한 며늘, 두 손주를 위한 감사의 기도도 빠지지 않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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