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耳目)이 집중됐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귀와 눈이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에 쏠려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에 의미를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에서 우리는 왜 짜릿함과 뿌듯함, 설레임과 긴장을 고스란히 함께 나누어 갖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70년 세월도 끊어내지 못한 ‘핏줄’을 향한 본능적인 끌림이 아닐까.
친구를 사귀려면 우선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신뢰는 다시 대화로, 만남으로 이어져 마침내 관계를 형성한다. 우리는 무턱대고 “북한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사실, ‘믿을 수 있고 없고’는 대화와 만남이 전제되어야 할 수 있는 결과적 판단이다. 우선 만나봐야 할 일이다.
남북정상이 만나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넘나들며 대화하는 모습을 다른 누구의 눈과 귀를 거치지 않고 내가 직접 확인하고 나면서부터 우리는 ‘어쩌면 내가 잘 못 알았을 수 있구나’ 스스로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침내 북한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즈음해 나온 책 『선을 넘어 생각한다』는 북한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12가지를 정리해서 책 날개 부분에 실었다. ‘북한이 무너진다고 통일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북한에게 핵은 안전을 담보하는 보루이기 때문에 비핵화는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아야만 가능하다’, ‘북한은 성경, 신학자, 목사, 신도로 이루어진 종교집단과 유사하다’, ‘동질화를 강요하면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 뿐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이질성을 포용해야 한다’ 등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 번호를 붙여 정리 해 놓은 것이다.
버젓이 한 눈에 쏙 들어오게 핵심을 정리해 놓은 표지라니, 그 전략이 대범하다 못해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제 우리가 이 정도는 알아야 할 때’라는 뜻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을 너무도 몰랐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 ‘궁금증’자체를 마비시켰던 것은 전쟁이 가져온 ‘안보 병’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미정상이 만나는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가 명시되느냐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과연, 핵 폐기 문제만이 아닌 어느 것에서라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무언가가 단숨에 가능하기는 한 걸까.
통일연구원 박영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북한의 논리에 비추어볼 때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의 비핵화’가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전 세계의 비핵화’를 목적으로 그 1단계를 한반도 비핵화, 이후 동북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들이 처참하게 경험한 전쟁의 역사를 아로새겨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민족이다. ‘왜’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전쟁은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각인시켰고, 그 반대편에 있다는 평화는 절실함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스스로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을 두고 ‘평화’를 말하고 나아가 ‘전 세계 비핵화’를 주도하겠다는 북한의 큰 그림. 얼마 전 까지도 유행처럼 번졌던 말, “노벨평화상은 트럼프에게 주고 우리는 평화를 갖자”는 이 말은 북한의 큰 그림에 딱 들어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귀를 열고 다시 북한을 보자. 긴 세월 손에 잡히지 않는 분계선에 막혀있던 형제는 이제 겨우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마침맞게 이 시기에 읽어보면 좋을 책 두 권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북한전문가이자 평화학자 박한식 교수와 <서울신문> 강국진 기자의 대담을 담은 책 『선을 넘어 생각한다』, 그리고 친북과 종북을 가르는 법정에서 북한, 역사와 평화를 증언한 내용을 담은 책 『이재봉의 법정증언』. 결실의 가을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