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위드유 너머,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서지현 검사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종교계에도 이어졌다. 현재 각 종교계의 미투 운동의 현황은 어떠할까. 성과와 한계,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보는 토론회가 5일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천주교, “교회 성폭력을 비밀스럽게 다루는 과정·구조는 여전해”
천주교수원교구 한 모 신부의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자, 2월 2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후 3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교회 내 성폭력방지특별위원회 신설 ▲각 교구 성폭력 피해 접수 창구 설치 등 여러 대책을 내세웠다.
이를 지켜보면서 김선실 대표는 교회가 정말 피해자의 고통에 함께하는지,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대책들이 과연 실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자들이 교구에서 만든 기구에 찾아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봤지만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선실 대표는 ‘한국천주교 미투운동 지원센터’(가칭)를 제안했다. 아직도 많은 피해자들에게,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도 비밀과 신변보장을 받으며 문제해결이 가능하고 인권회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는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쳐 사죄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가해자도 새로운 출발을 기회를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죄는 피해자 인권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미영 가톨릭평론 편집장은 그동안 천주교회 성폭력 사건은 해당 교구장에게 고발이 되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해당 사제의 정직, 면직(환속, 제명) 등으로 조용히 처리됐다고 말했다. 한 모 신부도 정직 처리된 상태다. 하지만 ‘정직’된 사제는 징계가 풀리면 다시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기에 피해자나 신자들의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모 신부의 성폭력 사실을 알린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와 사제들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요구했지만 전수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교구에 신고했을 때 진행철차나 처리결과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범죄 대응 창구가 마련되고 성폭력 예방교육이 실시된 것 외에는 “교회 성폭력을 내부적으로 비밀스럽게 다루는 과정이나 구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1998년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부설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평화의 샘’이 생겼지만, 교회 성폭력 상담은 들어오지 않아 일반 또는 가출소녀 상담과 쉼터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이미영 편집장은 “가해자가 사제인 경우, 피해자가 교회 내 여성단체나 상담기관을 찾지 않는 이유를 정확하게 짚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관이 만들어진다 해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개신교, “미투 운동은 ‘관계 회복 운동’”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은 교회 공동체가 성폭력을 성관계로 해석하고, 성폭력 문제를 공동체 문제로 인식하지 못해서 가해자를 공동체에서 추방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왜 이제와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혹으로도 번진다고 했다.
미투를 어렵게 하는 교회의 특징으로 ▲남성폭력을 허용하는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 ▲교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한 교회 내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마녀사냥’을 꼽았다.
미투 운동으로 각 교단에도 변화가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제102회 총회에서 2018년 봄노회부터 교회 성폭력 예방 의무교육을 노회원(목사, 장로)들에게 격년으로 실시하기로 결의했고, 국내선교부는 한국성폭력위기센터, 기독교여성상담소, 장로회신학대 희망나무센터 등 3곳과 피해자 상담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뿐만 아니라 성폭력 전담 창구를(02-6959-2191) 개설하고 교회성폭력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를 실시한다는 구체적 방침까지 내놓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경우, 양성평등위원회가 지난해 총회에서 ‘교회 내 성폭력 금지와 예방을 위한 특별법’과 ‘성 윤리 강령’ 제정을 헌의했지만, 남성 총대들의 반대로 기각 위기에 처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양성평등위원회와 교회와사회위원회에서 1년 더 연구하기로 결의했다.
미투 운동의 심각성을 느끼고 양성평등위원회는 지난 5월, 교회 성윤리 의식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이번 총회에는 ‘성 윤리 강령’을 다시 헌의하고 성폭력 예방 매뉴얼을 제작·배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단 측의 노력은 가해자 처리 및 징계권 있는 노회가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한계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남성 목회자들의 분노에 찬 항변, 그리고 미투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행동지침(펜스룰)을 만들어 문제를 원천봉쇄하자는 점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투 이후 피해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 운동도 펼쳐졌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찬 증언을 직접 듣고자 하는 기도회와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6월 19일에는 기독교위드유센터가 설립됐고, 피해자지원네트워크도 출범했다.
채수지 소장은 앞으로 교회가 피해자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공동체가 돼야 하고, 회복적 정의를 담은 교회 성폭력 관련 법 제정 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미투 운동은 단순히 ‘성폭력 고발 운동’이 아니라 ‘관계 회복 운동’”이라며, “미투·위드유 운동을 통해 한국교회는 서로에 대한 회개와 용서, 치유와 애도를 거쳐 샬롬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 채수지 소장은 밝혔다.
류성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는 “내가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다고 말 할 수 없다. 남자이기 때문에 연대책임이 있어야 한다”면서, 남성의 참여율이 적고 그 중에 성직자가 없다는 부분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불교, “권력의 카르텔 끊어져야”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성문제에 연루된 승려의 경우, ‘은처승’이란 명칭이 빈번하게 제기되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는 “한국불교가 얼마나 남성중심적 시각이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지적했다. 성폭력 문제를, 숨겨둔 부인이 있는 문제로 희석시키기도 한다면서 문제의 초점에서 폭력은 사라지고 부인이 있는가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불교계 성폭력 특성으로는 ▲지속적이고 오래된 피해 ▲다른 정치적 의도로 왜곡하고 피해자 태도 비난 ▲낮은 젠더 감수성과 만연한 성차별 인식 ▲미비한 처벌과 법적 체계 부실을 꼽았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성인지 감수성으로 교단문화 바꾸기 ▲성평등 패러다임과 비전 제시 위한 기구 설치 ▲젠더폭력예방센터 운영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 ▲교단의 성차별·성폭력 예방 인식 함양을 위한 교육과 지침서 제작을 제시했다.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장은 지금까지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으로부터 종교권력이 보호를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언론에서는 보도를 하지 않거나 사법부가 기소를 하지 않는 등 “권력의 이권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는 이상 종교계 성추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카르텔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3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지만, 류성태 대표가 지적한 대로 남성은 소수에 불과해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