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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어떻게 사는가’가 ‘어떤 기억을 남기고 죽는가’를 보여준다
  • 전순란
  • 등록 2018-08-20 10: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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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7일 금요일, 맑음


올해는 날씨만 이상한 게 아니고 꽃들이 피는 시간도 예전과 전혀 다르다. 울타리의 능소화가 아직도 꽃을 피워 회춘한 할머니가 남부끄러워 얼굴에 홍조를 띠우며 배시시 웃는 듯하다. 6월에 피고 지더니 8월에 다시 피어났다. 우리 집 담장만 아니고 전국 어디서나 그렇다.


새벽에 일어나서 바짝 마른 정원에 물을 대고 풀을 뽑았다. 물을 주다보니 단감나무 밑이 꺼지면서 개미집이 드러나는데 나무뿌리 곁에서 수액을 채취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머잖아 감나무가 망가질 것 같다. 어딜 가나 지구의 청소부 개미가 너무 부지런해 탈이다.



8시 40분에 말남 씨 출상을 하러 버스가 와서 그 차로 한일병원엘 갔다. 다른 장례식 출상 때 같으면 ‘연령회(煉靈會)’ 사람들 댓 명 참석해서 기도를 올리는데 오늘은 열 명이 넘게 참석 했다. ‘우리 말남 씨 성당도 별로 열심히 안 나온 것 같은데 이상하다. 이렇게들 많이 나와 주시다니.’라는 내 말에 그니를 아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사회적인 사랑을 했고 그 열심함은 하느님이 다 아시니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우와, 뭘 알기는 아는구먼.’)


그니의 영정사진이 관 앞으로 가 서고, 연령회의 연도가 이어졌다. 병원을 나와 마지막 가는 길에 그니를 캐딜락에 모시고 가니 예전에 그니와 나누던 말이 생각났다. 하얀 캐딜락을 탄 순백의 신부를 보며 말남 씨가 ‘우린 저래 타보긴 글렀고… 의사 아들이나 잘 되면 탈까?’ 묻기에 ‘꺽정 마라. 니도 죽으면 태워줄게.’ 그니는 캐딜락 호강을 하면서 자기가 일궈온 어린이집, 자기가 수십 년 살아온 집 앞을 돌아 성당으로 가는 짧은 동네 나들이를 했다. 영정사진은 집안도 들어가서 한 바퀴 둘러봤다.



성당엔 그동안 그니와 크고 작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의 윤주옥 씨도 구례에서 새벽차를 타고 왔고 그니 때문에 낯익었던 사람들과는 눈인사를 했다. 장례식이란 죽은 이와 연관되었던 관계를 ‘총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본당신부님은 큰아들 황이가 훈련소에서 영세를 하고 그동안 한 번도 성당엘 안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라’는 사목적인 배려를 해주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열심한’ 여교우들이 ‘관면혼배도 안 받아 조당 중인데 그래도 되나?’라며 수군거린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천주교 신자들끼리 천주교 식으로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재혼해서 사는 천주교 신자들에게(천주교 신자들 간의 결혼은 무슨 사유로든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성당 나올 기회를 마련하려고 애를 쓰시다가 교회 최고위층 성직자들로부터 반발을 사신 일화가 떠오른다. 여나믄 추기경이 공개편지를 보내서 항의했단다. “자비가 계명을 못 이깁니다, 교황님!”


자, 유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교회법 학자들이나 추기경들마저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로운 배려에 항의를 했다니, 평범한 교우라면 당연히 저런 소리를 할 법하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한다!’는 계명이 있지만 전 세계 14억 천주교 신자 중 ‘혼배조당’에 빠져 성당에 못 나오는 3,4억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 저렇게 구시렁거린다면, 당신 외아들까지 보내셔 대신 죽게 하신 하느님이 얼마나 가슴을 치실까? 



생의 마지막 고비에 가면 셋이 남는단다. 죽어가는 이와 의사와 신부! 의사는 생명을 살려내는 자기 임무의 한계를 간파하는 순간 그 환자를 죽음에 넘기지만, 신부는 그 순간 그의 영원한 삶을 하느님께 이끈다. 죽음을 이겨내는 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의 순간인가!


말남 씨는 6년 전 돌아가신 남편 신 프란체스코가 묻힌, 포천의 전농동성당 교회묘지로 실려 가서 남편의 오른편에 묻혔다. 화장을 끔찍이 싫어하던 그니의 선택으로 땅속에 뉘이고, 흙을 뿌리고, 덮고 하는 동안 ‘외롭지 말라고’ ‘조금만 슬프라고’ 함께 기도해준 연령회 회원들의 동행으로 장례는 끝났다.





그녀는 갔고 이제는 남아있는 우리들의 시간. ‘어떻게 사는가’가 ‘어떤 죽음을 맞고’ ‘어떤 기억을 남기고 떠나는가’를 보았다. 내 가까운 친구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5시 반 함양행 버스를 타고 휴천재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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