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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당신도 목격자입니다.
  • 김유철
  • 등록 2018-08-21 10:59:49
  • 수정 2018-08-22 1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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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목격자> 스틸컷


‘스리슬쩍’ 외면이 키운 괴물


<목격자>란 영화가 한여름 조용한 파문을 가져왔다. 새벽 2시경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목격하는 사람과 살인자를 다룬 스릴러 영화다. 영화는 연속해서 잔인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벌어지지만 그것은 사건을 위한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맨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는 질문을 위한 것이다. 바로 첫 사건의 목격자가 “당신이라면?” 혹은 “나라면?”이라고 거듭해서 물으며 집요하게 답을 내라고 요구했다.


아파트라는 복합주거시설이기에 수많은 눈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설사 사건의 발생이 심야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 혹은 자신에게 미칠 영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예상한 무無관심을 넘어 불不관심으로 치닫는 도시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동시대인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였다. 과연 이런 무관심, 불관심은 개인적 이기주의나 가족을 위한보신주의에 그칠 것인가? 문제는 그런 ‘스리슬쩍’ 외면이 숱한 괴물을 키우는 비극의 씨앗이 되는 현실에 있다.


우리의 꿈은 어디서 온 것일까?


외신에 의하면 8월 11일 교종 프란치스코와 이탈리아 청년들의 만남이 있었다. 청년들은 도보순례 중이었고 교종은 청년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여러분이 갖고 있는 꿈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며 청년들에게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했다. 사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지난 2014년 8월 방한하였을 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도 젊은이들에게 같은 의미로 호소한 바 있다. 일어나라!는 말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책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덕의 아름다움과 복음의 기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유혹을, 또 그러한 압력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가정에서 태어난 덕분에 유아세례를 받고 첫 영성체 등을 비롯한 교회의 입교예절을 일찌감치 마무리(?)한 사람들은 다소 생소할지 몰라도 교회에서는 세례예절의 첫 관문이 예비신자의 ‘다짐확인’이다. 어쩌면 그 다짐이 세례의 조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교회에 무엇을 청합니까?”와 “신앙이 무엇을 줍니까?”라는 짧은 두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신앙’과 ‘영원한 생명’은 예식서에 정해져 있지만 진정한 ‘답’은 평생화두로 삼아야 할 일이다. 세례를 통해 내가 예수의 문을 두드린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교종 프란치스코의 ‘호소’는 청년에 그치지 않고 분명 우리 모두에게 “깨어나라”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애초 꿈이 있어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괴물’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 <목격자>에서처럼 이른바 사이코에 의한 범죄나 테러가 개인이나 사회를 두렵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극히 한정된 범위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수많은 법률과 사회적 도덕으로서 예방하거나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사회의 가장 정신적 상류(!)사회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종교단체들의 비리와 혼돈과 자기정당화가 날로 종교본질의 모습을 변형시키는 일들은 목마른 사람들로 하여금 좌절하고 ‘진리’에서마저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의 ‘아수라’를 연출한 장본인들의 잘못을 넘어 숱한 일들을 외면하는 무관심, 불관심이 가져온 일의 결과다. 우리가 ‘괴물’이라 부르는 부자교단, 권위교단, 일방교단, 천국교단은 결국 태어난 것이 아니라 외면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종교의 넘버 완, 투, 쓰리. 어느 곳 할 것 없이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심지어는 “이것이 종교냐?”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스스로 “내 탓이오”라고 말하지 않은 채 안들은 척, 못 본 척, 관계없는 척으로 일관하는 오늘의 주소가 마냥 슬프기도 하다. 혹여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달력만 뚫어지게 보는 것은 아닌가?


교종의 호소와 예수의 경고


“회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긴박한 부르심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을 제시합니다. 그 도전은,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여러분 각자가, 개인으로서 또한 공동체 차원에서,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이가 누리는 번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복음적 관심을 증언하는가에 대하여 반성하도록 도전해 옵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합니다.” (2014년 8월 18일. 명동성당.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교종 프란치스코.)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1-5)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시대에서 벌어지는 일의 ‘목격자’다. 외면해서 피할 방법은 없다.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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