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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용서 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서한 -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 끌로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8-08-22 16:06:06
  • 수정 2018-08-22 16: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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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한>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가톨릭교회에서 벌어진 성직자 성범죄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다음은 서한 전문 번역이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1코린 12, 26). 


다시 한번 상당한 수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성범죄, 권력과 양심의 남용으로 인해 많은 미성년자들이 겪어낸 고통을 인정하니 성 바오로의 이 말씀이 마음속에서 강렬하게 울립니다. 이는, 누구보다도 피해자들에게 또한 이들의 가족들과 더 큰 신자공동체와 비신자공동체에도 똑같이 깊은 고통의 상처와 무력감을 안겨주는 범죄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용서를 구하고 피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았을 때,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이러한 일들이 은폐되어 반복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도 아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한번 미성년자와 약자의 보호에 책임 다하겠다는 약속을 밝히는 일이 시급한 것입니다.


| 한 명의 구성원이 고통받는다면


최근, 자그마치 70여 년의 기간 동안 신부의 손아귀에서 성범죄, 권력과 양심 남용의 피해자가 된 최소 1000여 명의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자세히 서술한 보고서 한 편이 공개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이 과거의 일이라고 이야기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들이 평생 사라지지 않으며 이 상처들을 통해 우리가 이 끔찍한 일들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 같은 죽음의 문화를 뿌리 뽑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상처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피해자들의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은, 천국까지 울려 퍼졌으나, 오랫동안 무시당하고 묵살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부르짖음은 이를 묵살하기로 했던 공모와 그 심각성을 키운 잘못된 결정들보다 강력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그분께서 누구의 편에 서 계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틀리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조용히 역사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1루카 1, 51-53)


우리 삶의 방식이 우리가 외우는 말과 어긋나고, 이를 깨달을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부끄러움과 회개의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는 우리가 있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으며 수많은 삶에 가해진 피해의 정도와 중대함을 깨닫고도 제때 움직이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약한 이들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라칭거 추기경 (베네딕토 16세)의 말을 빌리고자 합니다. 


2005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도중에 라칭거 추기경은 수많은 피해자의 울부짖음을 듣고는 “대체 교회가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 심지어 온전히 주님께 속해있어야 할 이들 역시 그렇다니! 이 정도의 자만과 자아도취라니!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한 그리스도의 배신과 제자들이 과분하게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 것은 분명 구세주가 겪은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이는 그분의 마음을 꿰뚫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에게 ‘주님 구해주십시오(Kyrie eleison)’ (마태 8, 25 참조)라고 외칠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 모든 이가 함께 고통받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의 규모와 심각성은 전반적이고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현실에 대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회개의 여정에서 진실을 인정하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나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육신과 영혼에 상처를 입은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이어받으라는 요구를 받게 된 것입니다. 만약 과거에 우리가 태만으로 답했다면, 오늘 우리는 가장 깊고도 까다로운 의미에서, 현재와 미래 역사를 일구어가는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유형의 학대 피해자들이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려고 뻗은 손을 마주칠 수 있는 (『복음의 기쁨』 228항 참조) 환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연대는 우리가 사람의 존엄을 위험에 빠트리는 모든 것을 규탄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모든 형태의 부패, 특히 영적 부패를 퇴치할 것을 요청하는 연대입니다. 


영적 부패란 “안주와 자기만족을 가져오는 형태의 맹목입니다. 이때 기만, 중상모략, 자기중심적 태도와 미묘한 여러 형태의 자기중심성 등 모든 것이 용인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2코린 11, 14)하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65항).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받으라는 성 바오로의 권고는 우리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 9)라는 카인의 말을 되풀이하려는 시도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입니다.


저는 아동과 약자의 안전과 존엄의 보호뿐만 아니라 무관용 원칙과 범죄를 저지른 모든 이들과 이러한 범죄를 은폐한 이들에게 석명을 요구하는데 필요한 조치들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력과 행동을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이러한 행동과 처벌을 적용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그럼에도 저는 이러한 행동과 조치들이 현재와 미래에 더 큰 보살핌의 문화를 보장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한 노력과 함께,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은 교회와 사회의 변화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주님과 같이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개인적 회개와 공동체적 회개를 요구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자주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을 통하여 진정 새롭게 출발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고자 하셨던 바로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분을 뵐 수 있을 것” (『새 천년기』 49항)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같이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우리가 존재하며, 그분의 존재 안에서 마음의 회개를 경험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는데 기도와 속죄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모든 성스럽고 충실한 백성들에게, 주님의 명령에 따라 참회 기도와 단식을 할 것을 권유합니다.(1) 이를 통해 우리 양심이 깨어날 수 있으며 우리의 연대와 모든 형태의 학대에 “다시는 절대로”라고 말하는 보살핌의 문화에 대한 약속을 고취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하느님 백성의 적극적인 참여를 포함하지 않는 교회로서 회개를 생각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대체하고, 묵살하며, 무시하고 하느님의 백성을 소수 엘리트로 격하시키려고 할 때 마다 우리는 뿌리 없고, 기억도 없으며, 얼굴과 몸 그리고 결국에는 삶이 없는 공동체, 계획, 신학적 접근, 영성, 구조를 만들어내고 맙니다.(2) 이는 성범죄와 권력 및 양심 남용이 발생한 많은 공동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이상한 이해 방식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는 성직자 중심주의(clericalism)와 연관이 있는 경우로, 성직자 중심주의란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무화 시킬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신 세례의 은총을 축소시키고 깎아내리는 경향을 보이는 접근법”(3)입니다. 성직자 중심주의는, 신부들에 의해 조장되든 평신도에 의해 조장되든, 우리가 오늘 규탄하고 있는 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일에 도움이 되는 교회 단체의 단절로 이어지게 됩니다. 학대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형태의 성직자 중심주의에 공감을 담아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 주님께서는 한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어느 백성에 속하기 전까지 우리는 완전한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고립된 개인으로서, 홀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보다는 인간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인간관계의 구조를 생각하시어 우리를 자신 곁으로 끌어당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백성의 삶과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셨던 것”(『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수많은 삶을 어둠에 빠트린 이 악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식은 이를 하느님 백성인 우리 전체와 관련된 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한 백성과 공유된 역사의 일부라는 자각을 통해 우리가 안에서부터 쇄신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속죄를 위한 열린 마음으로 과거에 저지른 우리 죄와 실수를 인정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모든 교회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우리 공동체 내의 학대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행해진 모든 것들이 올바르고 현실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원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지 못 할 것입니다. 


단식과 기도의 속죄적 측면이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주님과 상처 입은 우리 형제자매들 앞에 용서, 그리고 부끄러움과 회개의 은총을 간구하는 죄인으로서 나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복음과 일치하는 원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행동을 구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복음의 기쁨』, 11항)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로서 우리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수도자와 성직자 그리고 가장 약한 이들을 돌보고 보살피라는 사명을 받은 모든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흉측한 일들을 인정하고 규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죄와 다른 이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도록 합시다. 죄에 대한 자각은 우리가 과거에 일어났던 실수와 범죄 그리고 상처들을 인정하도록 도와주며, 지금 우리가 더욱 열린 자세를 가지고 쇄신된 회개의 여정에 더욱 헌신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찬가지로, 속죄와 기도는 우리 눈과 마음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게 도와줄 것이며 종종 이 모든 악의 뿌리인 권력과 소유에 대한 갈망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단식과 기도를 통해 아동과 청년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이들이 느끼는 숨죽인 고통의 소리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도록 해주소서. 단식은 우리를 의로움을 갈구하고 갈망하게 만들며 우리로 하여금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지지하며 진실 안에서 걸어 나가도록 이끕니다. 단식은 우리를 뒤흔들고 우리가 모든 선한 이들과 함께, 그리고 사회와 함께, 진리와 사랑 안에서 모든 형태의 성범죄와 권력, 양심 남용을 퇴치하는데 헌신하도록 인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인류의 빛>, 1장)가 되라는 소명을 보일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한 명이 고통 받으면, 모두가 고통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기도와 속죄의 태도로, 우리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이러한 권고의 소리를 따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동정과 의로움, 예방과 치유의 선물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마리아는 아들의 십자가 발치에 서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곁에 꼿꼿이 섬으로써, 주저 없이 이를 행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이러한 교회로 인한 상처에 슬픔을 경험할 때, 마리아와 같이 교회에 대한 사랑과 충실함 안에서 성장하도록 노력하며, “더욱 기도에 매진하는 것”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 319)이 좋을 것입니다. 


첫 번째 제자인 마리아는 제자인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죄 없는 이들의 고통 앞에서, 변명이나 비겁함 없이 멈춰서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마리아를 바라본다는 것은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의 전형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은총과 내적 기름부음을 주시어 이 학대 범죄에 대한 우리의 죄책감과 용기 있게 이를 퇴치하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프란치스코 

바티칸 시티, 2018년 8월 20일

 


(1) : 그런 것은 기도와 단식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마태 17, 21)

(2) : 칠레에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보내는 서한. (2018년 5월 31일)

(3) :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장인 마크 우엘레(Marc Ouellet) 추기경에게 보내는 서한. (2016년 3월 19일)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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