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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한반도 분단이 공깃돌 놀이냐?
  • 전순란
  • 등록 2018-08-27 11:01:43
  • 수정 2018-08-27 11: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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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5일 토요일, 흐림


새벽녘 잠을 깨면 늘 걱정거리와 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이 없다. 오죽하면 ‘새벽닭 울 적마다 삶은 노엽고 원통했다!’라는 시구가 있을까? 


‘9월 3일은 엄니의 제사(60년)인데 집안 식구들이 만나서 위령미사라도 드리고 함께 저녁식사라도 하면 좋겠는데… 9월이니 추석에나 만나자거나 연미사는 각자가 드리자고 답하기 십상인데… 그래도 말 잘 듣는 막내동서한테는 말을 꺼내봐야지…’



‘추석이면 형님네에 갈까 그만둘까 해마다 고민하던 큰서방님은 하늘나라에 갔으니 올해는 거기서 편하게 우리 제사를 지켜보겠지. 엄니에게 성묘갔다가 서방님 유골묘에 들르면 평소 그리 좋아하던 막걸리나 한 병 사가야지.’ ‘태풍으로 하늘길이 막혀 연피정하러 서울 왔다 발이 묶인 작은아들 빵고신부가 오늘은 제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다 ‘쓸데없이 공상 소설 쓰지 말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싶어 ‘아자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마당 꽃밭 울타리 밖으로 한길 넘게 자라 오른 잡초와 넝쿨이 꽃들을 피웠으니 씨 맺기 전에 베어내야겠다. 보스코도 꼬셔 욱이네 밭쪽으로 축대에 오른 잡초와 잡목을 제거해 달라고 부탁했다. 



때마침 드물댁이 올라와 김장무우를 심겠다며 같이 심잔다. 드물댁 말로는 오늘이 백중(음력 7월 15일 보름)이고 ‘백중이면 무가 자라 소가 뭇잎 뜯어 먹는다고 야단맞는 날’이라 했는데 요즘은 날이 더워져 백중에야 무를 겨우 심는단다. 


나와 드물댁은 무와 쪽파도 한 고랑씩 가득 심고, 배추 심을 두 고랑을 남기고 나머지 공터에는 쑥갓, 아욱, 상추, 로메인상추, 루콜라, 모듬쌈, 열무… 씨앗이 있는 대로 골고루 심었다.


보스코는 담 밖 축대에 사다리를 놓고 잡목을 제거하고 잡초에 낫질을 시작했다. 내가 한창 밭일을 하던 중에 보스코가 “으악!” 소리를 지르며 번개같이 내달린다. 100m를 9초에 돌파할 속도다, “땡삐다!” 풀섶에 손을 내밀다 장갑 위로 몇 방을 쏘고 그야말로 벌이 ‘벌떼처럼’ 덤벼들자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단거리 선수가 되어 도망나오던 참이었다. 



얼마나 따갑고 아픈지 모른다며 힘을 못 쓰고 헉헉거려 신용카드로 독침을 제거하고 ‘게토톱’을 갖다 발라주고 알레르기약을 먹였다. 조금 뒤 내가 벌퇴치모자를 쓴 채로 모기약 스프레이를 들고 가서 남편에 대한 복수를 톡톡히 하였다. 이번에는 저 남자가 전순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놓친 벌의 수난이 시작됐다. 풀섶에서 덤벼나오는 100여 마리의 벌떼를 쏘아 맞추거나 쫓아내고 아예 벌집을 따버렸다. 땡삐가 아닌 그 말벌떼는 감히 우리 남편을 쏘았다가 온 집안이 망했다! 보스코는 벌겋게 부어오른 왼손으로 그래도 자판기를 두들길 수 있어 다행이다. 


드물댁은 오늘은 백중이라 동네아짐들이랑 찌짐 궈먹고 놀겠다면서 우리도 찌짐 궈먹으라면서 박닢과 깻닢을 챙겨다 준다. 마르타 아줌마가 따다 준 박도 한 개 있다. 견불동 사는 조감독이 네 시경 잠시 들르겠다 해서 그 시각에 박닢부침이나 대접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런데 3시경 조감독이 ‘토벌대를 피해 도주하는 12명의 빨치산’을 인솔하고 나타나서 삽시간에 휴천재를 접수했다. 혼자 들러 냉수나 한 잔 마시고 가겠다는 말이 내가 전달받은 통신 전부였는데 13명의 ‘산사람들’이 찾아오니 평소에 나 답지 않게 좀 당황했다.


그래도 예전에 우리와 친분 있던 김인서 노인을 아는 분도 오셨고, 바로 여기 문정리가 남로당 빨치산이 출정한 곳이라 하여 그 장소를 찾아왔는데 못 찾았다니 누가 아는가 나라도 수소문 해봐야겠다. 우리 분단의 역사를 현장답사로 배우는 이들의 열성이 대단해 보였다. 보스코가 ‘대접이 좀 부실했다고, 담에 미리 연락하고 오시면 보다 나은 대접을 하겠다’는 인사말로 일을 보냈다(‘제 남편이 다음엔 잘 차릴 거예요. 워낙 한 음식 솜씨 하거든요. 기대해 보세요.’ 듣다 못해 내가 옆에서 한 한 마디).



아직도 분단으로 70년간 가슴을 앓아온 사람들이 ‘이산가족상봉’을 하며 대성통곡하고,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노인 세대도 있고, 한반도의 분단과 비극을 만들어놓고서 공깃돌 놀이처럼 장난하는 트럼프 같은 작자들이 있고, 그런 자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참담한 심경을 지켜보며 한없는 분노가 치솟는다. 


그래서 오늘도 테라스에서 하봉에 햇살을 남기고 져가는 붉은 노을과 와불산 능선으로 솟아오르는 백중달을 바라보며 저녁기도를 올린다, 이 겨레를 불쌍히 여기시라고, 문대통령을 붙들어 주시라고, 그를 흔들지 않고 협조할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로 뽑혀서 고맙다고…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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