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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새 주임 신부님 ‘전임 덕’ 많이 보시겠다!
  • 전순란
  • 등록 2018-09-10 11: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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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8일 토요일, 흐림


오신부님댁은 3층인데 올라가는 계단 문이 늘 열려 있어 숲속에 가득한 모기 중에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놈들은 층계 구석구석에 숨어들어 서성거리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은근히 친한 척 다가온다, ‘아저씨, 담배 한 대 있수?’ 하며. 없다고 손사래를 쳐도 얼마나 집요한지. 나도 나지만 성가신 일을 못 견디는 빵고신부를 생각해서 ‘전기 모기채’를 하나 사다 주었다. 




어려서 장난감 사주었을 때처럼 어찌나 좋아하던지, 층계를 오르내릴 적마다 그 모기채를 휘두르며 좋아한다. ‘따닥! 탁탁!’ 경쾌한 저격의 소리! ‘얘, 여기도 있다! 저기로 도망가네!’ 밀고자가 된 엄빠랑 한 팀이 되어 살생의 추억을 공유한다. ‘엄마, 나 살생을 너무 많이 해서 오신부님께 고해성사 봐야 할까봐.’ 아침 식사 후 층계 모기는 모두 소탕했다며 오신부님댁에 모기채를 놓고 내려오다가 서너 마리의 모기가 오가는 걸 보고 우리 셋은 동시에 ‘아깝다!’ 외쳤다.



토요일은 수녀님들이 금악본당의 7시 미사를 가고 두 사제만 미사를 드리는 날이란다. 오신부님댁에서 우리 넷이 미사를 올렸다. 소가족제도의 끈끈함도 좋았지만 수녀님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가 나는 더 좋았다. 꼭 미사를 드려 주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수녀님들은 김치를 담글 때마다 오라비들 챙기듯 김치를 갖다 준단다.


어제 저녁의 파티를 끝내고서도 ‘숨비소리’의 행주에서 냄새가 난다며 삶아다 주겠다고 챙겨갔다. 사내에게 엄마나 아내가 없으면 주님은 모든 여인의 동정심을 움직여 엄마노릇을 하게 만드신다. 각자에게 필요를 아시고 그 몫을 챙겨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침식사를 하며 앞으로 수도공동체를 마련하는 일로 의논들을 하기에 삼방산 가까이서 부동산 소개를 하는, 보스코의 살레시오학교 동기 영길씨가 생각나서 제주를 떠나기 전 찾아보기도 했다. 영길씨 부부는 40년 넘게 알고지낸 사이에다 빵고신부가 태어나서부터 보아온 분들이어서 당신네 아이처럼 반겨주었다. 


부인이 ‘덕수카페’를 하는 며느리에게 가자며 ‘거기 가면 커피값이 공짜!’란다. 자기가 차려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미안하고’ ‘대견하고’ ‘고마운’ 게 부모 마음이다. 며느리가 개발하고 특허출원을 했다는 ‘효은 양갱이’는 모양도 예쁠뿐더러 맛도 좋았다. 천혜향이 70%에 팥과 한천으로 만들어진 양갱은 선물하기에도 좋겠다.



영길씨는 큰아들이 하는 ‘초가집’에서 전복이 한가득한 해물뚝배기로 우리를 대접해 주었다. 그렇게 이른 점심을 하고 빵고신부가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주어 작은아들과의 4박 5일의 ‘향~복한 제주 휴가’를 마치고 2시 30분 비행기를 탔다. 아들 곁에서가 이렇게나 행복하다니!


한 시간 남짓 날으니 서울! 이왕지사 공중에 떴으니 휴전선 넘어 신의주까지 간다 해도 잠시일 텐데 남북화해를 두고 어쩌면 저 보수꼴통들 말도 많고 시비도 많단 말이냐! 아직도 남의 다리나 긁으며 ‘어, 씨원하다!’는 조중동의 헛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 것인가!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묵직한 여행가방을 끌고 ‘공항철도’까지, 서울역에서는 ‘4호선’까지, 성신여대역에서 ‘우이전철’로 갈아타고 ‘우이솔밭’까지 도착하니 두어 시간 걸려 저녁 6시! 딱 좋은 토요특전 미사시각! 성당으로 짐과 여행가방을 끌고 도착하니 ‘이 노인들, 하늘나라로 여행 떠나시나?’하는 교우들 눈길이 ‘궁굼혀! 궁금혀!’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에 대한 혜선엄마의 소감. ‘목소리도 좋고’, ‘잘생겼고’, ‘사람 따뜻하고’, ‘강론도 정성껏이고’, 무엇보다도 ‘정상적!’이란다. 오늘 미사에 참석하며 그니의 말이 다 맞는 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 신부님 ‘전임덕’ 많이 보시겠다!


미사 후 보스코는 동네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서(그동안 나는 간단한 시장을 보고) 만원어치의 멋을 뽐내며 약초원 사잇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닷새만의 귀가! 맞아주는 이 없어도 우리를 전신으로 품어주는 집! 가방을 풀고 팔 벌려 방바닥에 누우니 세상이 온 세상이 다 내 것이다. 여행은 늘 내 집의 귀함을 새삼 일러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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