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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엄마의 평화, ‘착한 치매’가 끝나가는 걸까?
  • 전순란
  • 등록 2018-10-01 10: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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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9일 토요일, 맑음



지난 추석 때도 우리 집 최고의 효자, 둘째 아들 호천이와 요즘 보기 드문 며느리, 둘째 올케가 어머니를 실버타운에서 집으로 모셔갔다. 명절 하루만 가족 전부가 모이고, 나머지 나흘은 호천이네가 엄마를 모시고 다니며 실버타운에서 할 수 없는 일이나 맛있는 걸 먹여 드리니까, 웬만한 구경은 걔와 하기에, 엄마도 호천이라면 끔뻑하신다.


지금까지 엄마는 약간의 치매가 왔지만 소위 ‘착한 치매’가 왔다고 우리는 나름 안심해왔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당신이 하기 싫은 일, 예를 들어 이를 닦으시라든가, 세수하고 주무시라든가 하면 내게도 눈을 심하게 흘기셨다. 나한테만 그러나 내심으로 서운했지만 그 연세에 앉거나 서기도 귀찮으셔서, 그저 힘들어서 그러신가보다 하고 넘겼다.


엄마는 워낙 손이 귀한 집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맏딸이었기에 귀여움도 많이 받았고, 그 당시(100여년 전) 대학교(이전)를 다니셨고, 그 시대에 국가대표 농구선수도 하셨고, 판사 딸로서 시집갈 때 몸종을 둘이나 데리고 가셨다니 그 자존심이 얼마나 하늘을 찔렀겠는가!


그런 귀한 딸을 친정아버지는 당신의 배제고등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일본 명치대 법대를 나왔다고, 덜컥 딸을 울 아부지한테 시집보냈다니! 그 사위가 주변머리가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럽고, ‘혈기부리기’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자였는데 다만 아내한테 하는 최고의 배려라곤 월급을 봉투째 갖다 주고 용돈을 겨우 얻어 쓴 일 정도였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의 근검절약과 교육열은 누구도 못 따라갈 정도였다. 자식들의 공부는 엄마의 열의에 반이나 됐을까? 이웃 동네 초등학교 교장사모님이 엄마와 동기였는데 그 집에도 애가 우리처럼 다섯이었다. 우리 모두가 전문대를 포함, 대학을 나온 것과는 달리 그 집은 큰아들 하나만 대학을 나왔다. 


당시에는 교장 월급이 너무 적어 다섯 아이를 다 학교에 보내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울 엄마의 고생과 억척이 오죽했겠는가! 그런 엄마의 마음 밑바닥에는 자긍심과 엄마의 도도함이 지금도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누가 뭐라고 나무라면, 엄마 심성이 착해서 참기는 하지만, 마음 한켠에 담아 놓곤 하신다. 지금까지는 그걸 잘 눌러 쟁여 놓았는데 이제는 착한 치매를 누르던 커다란 덮개가 들썩이는지 엊그제 효자 호천이 내외를 깜짝 놀라게 만드셨단다.


엄마가 방바닥에 자꾸 침을 뱉기에 호천이가 엄마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엄마, 침 좀 뱉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에미를 때리냐? 그래 죽여라, 죽여! 그럼 너희가 편하겠지?” 하시더란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밤이 되어 올케가 낮에 입고 계시던 옷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으시라고 하자 “우리 딸들은 이렇게 안 하는데 너는 친정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라는 심한 나무람을 평생 처음 듣고서 놀란 올케는 밤잠을 못 잤단다. 


지난번 나에게 눈을 흘긴 것도 처음 일이었는데 그때부터 ‘못된 치매’의 시작이었을까? 아이가 크면서 달라지고 바뀌듯이 노인도 고비마다 바뀐다더니, 엄마의 평화, 곧 ‘착한 치매’가 끝나가는 걸까? 저러시면 따로 돌봐드리는 아주머니들도 불편할 텐데… 담 주 화요일에 가면 눈여겨봐야겠다. 



어쩌면 그건 내 장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유무상통에서 좋다 궂다 말씀이 일체 없고 방긋 미소만 띠고 계셔서 양로원에서도 제일 착하고 점잖은 분으로 모셔져 왔는데… (당신 입으로는 가톨릭 유명인사인 사위 보스코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그러신다 했다)


광주에서 체칠리아씨 친정어머니의 대녀 살레시오회 수녀님이 도정에 손님으로 오시는데 체칠리아의 자동차에 자꾸 체크등이 들어온다고 해서, 보스코에게 점심상을 차려놓고, 그 차를 함양에 갖다 주고 내 차로 일행을 모시고 다녔다. 어머니와는 먼저 상림을 걸었고, 늦게 도착한 수녀님과는 샤브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콩꼬물에서 빙수와 커피를 들었다.


어린 시절 한 마을에 사는, 당신 엄마의 친구를 대모님으로 모시고 영세를 했고 수도자가 되고도 대모님을 찾아뵈러 먼 길을 온 수녀님이 기특하다. 늙은 엄마를 한 달에 한번 찾아가는 내 발걸음도 가볍지가 않은데….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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