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이장로님네 가훈(家訓)이 ‘정직(正直)’이랍니다!
  • 전순란
  • 등록 2018-10-08 10:15:22
  • 수정 2018-10-08 10:16:56

기사수정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비



부자 돈 빼내 가난한 고객에 대출해준 ‘이탈리아 로빈후드!’ 은행원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플리바겐(유죄 인정 조건부 감형 협상)을 받아들여 징역 2년형에도 감옥행은 피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은행은 고객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곤경에 처한 고객도 도와줘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으므로 고객이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해 곤경에 처하면 부자 고객의 예금을 몰래 빌려주어 우선 은행빚을 갚게 했단다. 


고객은 꼭 돈을 갚을 것이라고 믿었다는데, 갚은 사람도 있었지만 갚지 않은 고객도 있어서, 결국 발각이 되어 집과 직장을 잃었단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만 보아온 한국사회에서는 그에게 감형을 내린 이탈리아 사법부가 되레 인간적이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오늘 이명박의 1심 결과가 나온 날 읽은 해외토픽이라 그 얘기가 더 신선했다. 축재의 욕심으로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죄로 징역 15년 벌금 130억! 그가 저지른 짓에 비해 너무 형이 약하지만, 박근혜에 이어 이명박도 아주 잡아넣게 되었다. 독재하다 망명가서 죽고(이승만), 심복부하한테 총 맞아 죽고(박정희), 군사반란죄로 사형을 언도받은(전두환, 노태후) 자들의 대열에 두 장기수(長期囚)가 따라 섰으니, 대한민국은 나라치고 참 운 나쁜 나라다.


오늘 죄에다 앞으로 계속 불거질 4대강공사, 자원외교로 나랏돈을 날린 죄가 줄줄이 나올 테니 김기춘 다시 수감 되듯, 그의 여생 마지막 집이 감옥이라면 ‘내 집이다’ 하고 편히 맘먹고 적응하고 사죄하며 살아야 ‘그나마 사람이다’는 말을 들을 법한데…. 여하튼 ‘다스는 누구겁니까?’라는 김어준의 물음은 20여 년 만에 답이 나왔다. 모든 혐의에 “나 그렇게 안 살았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전 국민 앞에서 큰소리치던 이장로님네 가훈(家訓)이 ‘정직(正直)’이라는데…


10시에 종로 공안과에 정기진찰을 받으러 나갔다. 부었던 망막도 어느 정도 괘도를 찾아 가는 듯, 안과 선생님은 다음 달에 한번만 더 오면 끝난다고 한다. 길게도 끌어온 눈 수술 후유증으로 선생님과 친해진 것 말고는 남는 게 없는 나들이들이다.


그래도 내가 서울 왔다고 반겨주는 벗님들이 있어 서울 길이 견딜 만하다. 비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에도 한나절이라도 날 보겠다고 실비아씨가 인천에서 종각역까지 찾아와, 둘이서 우이동으로 돌아왔다. 또 ‘우이솔밭공원역’에서 잠시 기다렸다 엄엘리 부부와 만나 집으로 함께 올라왔다.


태풍 ‘콩레이’가 북상중이어서 지리산에도 북한산에도 내리는 비는 같기에,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펴고 함께 발 뻗고 놀듯, 된장찌개에 두부전골로 점심을 먹고 2층에 올라와 커피를 들었다. 커피 메이트로 나누는 이야기는 실비아씨말대로 정말 ‘찰진’ 그니의 수다!



그니는 아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치려 꼭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므로 아들이 몰고 다니는 차도 겨우 굴러다닐 정도란다. 얼마 전 입사면접을 보러 들어간 회사 사장이 창밖으로 그 차를 내다보고서 ‘저게 자네 찬가?’라고 묻는 품이 ‘저걸 차라고 타고 다니나?’라는 투로 들려, 엄마 닮아 한 성깔 하는 아들은 그대로 일어서서 면접실을 나왔단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더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


또 아직도 미취업인 그가 어떤 처녀를 만나 ‘제 차가 저래서 태워드리기 좀 그러네요’ 했더니만 ‘차가 어때서요, 굴러가면 됐지?’라며 사귀자고 동의하더라나. 그 얘길 전해듣고 ‘얘, 그 처녀는 진짜다!’라고 평했다는 실비아씨! 헌 고물 차가 아들의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하고 며느리감 판별하는 저울이 되어주더란다.


그니와 함께 있으면 그니 특유의 재담에 웃느라 우린 시간가는 줄 모른다. “고생을 하다보면 하느님이 무당보다 못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당집은 방문에 들어서기 무섭게 방울을 짤랑거리며 ‘돈뽁’(아니면 서방뽁) 되게 없는 년이 제대로 관우장군님(요즘은 ‘맥아더장군님’) 찾아오는구나!”라며 기부터 죽이고 내 신세 죄다 맞히듯이 행세하는데 비해서, 하느님은 말씀 한 마디 없으시고, 고생고생 시키시다, 내가 발버둥을 치고 아웅다웅하면서 겨우겨우 살아남으면 그제사 ‘그게 다 내 덕이다!’ 하시더란 말이에요.” 


하느님의 침묵을 알아듣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섭리를 피부로 깨우치고, ‘아무렴 어때요, 모든 게 은총인 걸?’이라고 말할 줄 아는, ‘살아 있는 신학’이 그니의 우스개에서 엿보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