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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부부 함께 찍은 영정사진’이 딱 필요한 사람들
  • 전순란
  • 등록 2018-10-17 11:41:41
  • 수정 2018-10-17 11: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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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6일 화요일, 맑음



아침부터 이웃 사는, 미용실하는 아줌마가 전화를 했다. 우리집 담밖에 붙은 하수구 위쪽에 큰 비닐봉지 세 개에 낙엽이 가득 담겨 버려졌는데 두 개는 앞집 아줌마가 버렸다 했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버렸다고 그러는데, ‘지구를 지키는 불사신’이라고 자칭하면서 어찌 그러냐고 한다. 한번 물어보려 해도 만날 수가 없었는데 마침 우리 차가 골목에 보여 전화를 한단다.


우선 어제 밤에 와서 갖다버릴 시간도 없었거니와, 낙엽을 버리려면 열 발자국 더 가서 산에 버리지 거기다 왜 버리냐 고 반문을 하며, 아줌마를 불러 비닐봉지를 풀어 전수 조사를 함께 했다. 비닐봉지 속엔 참나무 잎, 은행나무 잎, 밤송이, 떡갈나무 잎으로 가득했다. ‘우리 집 정원의 수종은 향나무, 단풍나무, 진달래, 능소화가 전부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니까 ‘내가 그렇지 않아도 빵기엄마는 아닐 꺼라고 그랬어요’라며 한 걸음 물러선다. 


내가 떠나있던 세월에 이 동네 ‘만년반장’ 전순란을 사람들이 잊었구나 싶어, 말없이 문제의 그 봉지를 메고 산으로 가서 나무 밑 흙이 파인 곳에 덮어주고 비닐은 구청의 쓰레기 수거용이어서 갖고 돌아와 아짐들에게 건네주었다.


동네방네 어려운 일만 있으면 달려오고 함께 달려갔던 친구, 가을이 깊어 친구생각은 낙엽색깔처럼 더 짙고, 쓸쓸한 가슴은 휑하니 뚫려 찬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김말람! 너무 보고 싶고 허전해 골목을 내려가 그니의 불꺼진 집 앞에 서성이다, 혼자 주르륵 눈물을 떨구다, 그 골목에 사는 현옥이 언니를 찾아갔다. 병상의 말남씨를 친정엄마처럼 간병하고 돌봐주던 여인이다.


내가 왜 왔는지 마음을 먼저 읽은 현옥 언니는, 그동안 울고도 남은 눈물을 쏟아내듯, 어깨를 들썩이며 내게 얼굴을 묻고 엉엉 운다. 말람이는 그래도 행복한 여자다. 그니를 위해 아직도 울어주는 사람이 이 지상에 남아 있으니… 하늘나라에서도 뿌듯할 꺼다.


오후 3시 아리랑TV에서 인터뷰를 하러 ‘빵기네 집’엘 왔다. 해외에 사는 동포를 위한 방송이란다. PD는 젊은 시절 보스코의 「해방신학」도 읽었고, 어렵사리 가톨릭으로 입교하면서 보스코에게 대부를 서달라고 청했다가 ‘초면’이라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보스코가 쓴 책으로 라틴어도 공부했고, 작년에 보스코가 ‘정암학당’에서 행한 강연도 들었단다. 



그렇게 의식 있는 사람의 생각이 해외로 나가 사는 사람들의 굳어진 머리와 시각을 어떻게 고쳐나가는지 궁금하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해외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더 극명하게 갈라져 있다. 출국하던 임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판단과 문화개념이 고스란히 고착되어 도대체 변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도 여자들은 새 환경과 문화에 나름대로 적응을 하는데 남자들은 대개 ‘꼴통’으로 남기 쉽다. 


대담하는 기자 역시 사촌오빠가 서울교구 사제여서 어제 아무한테 인터뷰를 하러 간다니까 ‘그분 아들이 사제이고 자기와 서품동기’라고 하더란다. 이렇게 프란치스코 피디, 마리아 기자와 대담을 나누니 보스코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희망을 신나서 얘기했고 나도 맘놓고 차대접을 할 수 있었다.


해질녘 마을길에서 어떤 여인을 만났다. 헤이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한단다. 우리 동네가 좋아서 일하는 동안만 이사를 왔다 해서 집안으로 초대하여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 ‘남편으로부터 떨어져 남편을 놓아두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여인도 있구나!’ 경이스럽다. 보스코는 내가 없으면 뭐든지 50%만 하므로 혼자 놓아둘 수가 없다. 


어제도 지리산에서 당도하여 짐을 내리고서는 차 뒷문(유리창 아님) 활짝 열어놓은 채 ‘잠그고 왔다’하고, 오늘 아침에는 자기 옷장의 여름옷을 3층 다락에 들고 올라가서는 그냥 던져놓고 내려왔다. 그래서 보스코가 하는 일마다 뒤따라 다니며 나머지 50%는 내가 정리하고 챙기고 마무리해야 한다. 


어제 ‘부부가 함께 나오는 영정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우리야 말로 한날한시에 죽어야 해서 딱 그런 영정사진이 필요한 부부다.


빵기가 6시경 공항택시로 도착했다. 국내회의와 세미나, 방콕 회의 때문에 온 길이다. 그의 짐가방은 언제나 만나는 사람 전부에게 나눠 줄 선물이 가득해서 엄마에게도 한 아름 안겨준다. 일시 귀국시 먹고 싶은 게 중국집 음식이어서 전화로 시켜먹고, 급히 내려가서 이발을 하고 왔다. 우리 작은아들 빵고와 중고등학교 동창인 아들을 둔 단골이발사는 아침에 가게를 열며 첫손님으로 빵기아빠를, 저녁에 가게를 닫으며 그 집 큰아들 빵기를 손님으로 받아 기분 좋았을 것이다. 


언젠가 빵고신부가 선물받은 '중국 성모' 성상의 목을 내가 부러뜨렸다. 오늘 빵기가 순간접착제로 붙여주며 ‘짝퉁 성모’(‘마데 인 치나’, made in China)여서 부러졌을 거란다. 서양에 많고 많은 ‘검은 성모’(Madonna Nera: 역사상 최초 그려진 성모화상도 ‘검은 성모’였다니 성모님이 실제로 셈족의 검은 피부였을 게다. 우리 집 것은 ‘오로파의 성모’) 성상과 나란히 세우니 잘 어울린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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