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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모대감님의 장례미사
  • 전순란
  • 등록 2018-10-22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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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맑음



6시에 일어나 모신부님 장례미사에 갈 채비를 했다. 기백도 좋고 목소리도 크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분이어서 천국 가는 길도 성큼성큼 걸어가고 계실 꺼다. 2011년 12월 4일 벨기에 선교사 구마르코 신부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이 추모사로 성당 안이 쩌렁쩌렁하게 ‘알렐루야!’를 외쳐서 우리 모두가 놀란 일이 있다. 그분 얘기로는 ‘구신부님이 하느님 나라에 가셨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슬픈 얼굴을 하지 말고 즐겁게 보내드리자!’는 의미였다.


모신부님이 마지막을 보내시던 병원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는데 뼈가 붙으려면 얌전히 누워계셔야 하는데 천성적으로 활동적인 분이라 자기 몸이 부러졌음을 잊고 움직이려 하시고, 군데군데 꽂아놓은 수액과 주사약도 견디지 못해 다 뽑아버리시니까 결국 손에는 장갑을 끼우고 두 팔을 묶을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갔단다.


본인도 병원측도 서로 힘든 상황에 살레시안 형제들이 찾아가서 그분이 제일 좋아하시는 라틴어 성가(Salve Regina, Magnificat, Te Deum)을 불러드리자 그 노래들을 함께 부르시면서 평정을 되찾으셨고 회원들이 떠나오자 “이제 천국에서 만납시다!” 라고 인사를 하시더란다. 수사님들은 ‘이젠 신부님이 하늘나라에 가셔도 되겠구나!’하며 많은 은혜를 받았단다. 


아이들에게 늘 건네시던 그분의 인사로 '알레그로!'(Allegro!: 기쁘다!) 라고 하시면 아이들은 '셈쁘레 알레그로`(Sempre allegro! 항상 기쁘다!)라고 답했고, 영어로 '비 해피'(Be happy!)라고 하시면 '올레이스 해피'(Always be happy!)라고 답했다니 그분은 천국 길에도 덩실덩실 춤추며 가실 게다.



우리는 모두 순례자들이고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간 후에 우리가 닿을 최종 목적지는 하느님이심을 모두 안다. 그분은 목적지에 도착하셨고 이제는 하느님 품에 돛을 접고 닻을 내리셨다. 보스코가 졸업생들이 ‘모대감’이라고 불렀다는 이 은사 신부님의 제자를 대표하여 추도사를 하였다. 


그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 담긴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 장례미사에 온 각자가 모신부님과 닿은 인연을 일깨웠다. 내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씨앗을 마음 밭에 뿌려준 시간이었다. 아마 어려서부터 그분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은혜를 입었기에 가능한 고백이었다.


미사 후에, 장례식에 온 동창 영준씨를 만나 살레시오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관구관 아래층 카페에서, ‘오늘 아름다운 추도사를 해주셔서 꼭 대접하고 싶었습니다’는 명목으로 공짜 라떼커피를 얻어 마셨으니 이 또한 보스코가 말해온 ‘공짜클럽’의 힘이다.


점심은 영준씨 초대로,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시장이 새로 지어진 뒤 꼭 한번 가보고 싶던 차에, 살아 있던 킹크랩과 민어를 골라 ‘영념집’으로 가서 먹었다. 살아 펄떡이고 움직이던 생선들이 내 손가락질로 산 채로 삶아지고 칼질되고 것도 미안하고, 식당에선 구입해간 생선을 쪄주고 회 떠주는 비용을 너무 많이 받아 좀 떨떠름했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실비아씨는 ‘돈은 나누어 쓰는 거니 아까워하지 마세요.’라고 한 마디 거들었다.


영준씨를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경세원’에 데려다주고, 거기까지 간 김에 헤이리에 있는 오채현 조각가의 ‘타임캡슐’ 카페에 들렀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나 오작가나 부인이나 타임캡슐 속에 머물러 있었는지 젊은 모습 그대로다. 



2005년에 로마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관저에 오채현 작가의 성모상(보스코가 주문하여 벽감에 설치되었는데 보스코는 이 성모님을 ‘짜리몽땅 성모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을 설치하러 아빠를 따라온 오작가의 아들은 이제 군대를 필한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라니… 타임캡슐은 우리 어른들에게만 통하고 아이들에게는 비켜간다.


자유로를 달려 한강변을 지나 돌아오는 길. 철조망에 갇힌 강물이며 그 위를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를 석양에 비쳐보며 이념의 굴레라는 철조망을 쳐 스스로 갇힌 우리가 철조망을 걷어내고 훨훨 남북으로, 만주와 시베리아로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꿈’을 꾼다. 송추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 너머로 걸린 낮달이 ‘기약 없는 기다림’처럼 보여 서글프지만…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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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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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subok212018-10-23 05:37:51

    나니님, 모신부님 별세 소식을 엊그제에야
    사레지오 2회 모임에 가서 들었습니다.
    모신부님, 민신부님, 그립기 짝이 없는 분들이십니다.
    명복을 기도드리겠습니다.
    김수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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