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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중재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참회’해야
  • 문미정
  • 등록 2018-10-23 17:41:42
  • 수정 2018-10-30 18: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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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해방정국, 분단 그리고 한국천주교회`를 주제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정기 심포지엄이 열렸다. ⓒ 문미정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민간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가운데, 22일 ‘해방정국, 분단 그리고 한국천주교회’를 주제로 해방정국과 남북 분단 과정에서 천주교회가 보였던 태도를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기협 역사학자는 천주교회 입장에서, “조선에서 교회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을만한 국가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회가 자리 잡기 위해선 국가와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19세기에는 국가와 교회가 서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화합하지 못 했고 20세기에는 국가가 식민지가 되면서 교회가 관계를 맺을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 김기협 역사학자 ⓒ 문미정


김기협 역사학자는 제국주의에서 냉전으로 이어졌던 패권주의 시대의 세계질서는 ‘힘의 지배’였다면서, 물리적 힘이 아닌 정신적 권위는 거버넌스 원리로서 힘을 쓰지 못하는 시대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거버넌스를 모색하는 노력 속에서 정신적 권위의 역할 회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끝으로 1980년대 남한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나라꼴이 바로잡히는 단계에서 천주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이제 나라꼴이 더 크게 바로잡히는 단계에서 교회의 역할이 더 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남북분단 과정에서 천주교회는 어떤 태도 취했나 


김선필 제주도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원은 ‘천주교회가 광복 이후 남북분단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을까’란 의문을 던지며, 당시 천주교회의 모습을 되짚었다. 


광복 직후 한국교회의 대응 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일단 살고보자’였다고 지적했다.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선 새로 들어오는 점령군에 잘 보일 필요가 있었으며, 평소 반공주의적 입장을 펼쳤던 모습도 버리고 소련군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미국이 남한을 통치하면서 천주교회는 철저히 친미세력이 될 수 있었고, 친일에서 친미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면서 과거 친일세력을 세탁했다. 이를 통해 과거에 누리던 기득권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 김선필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 문미정


김선필 연구원은 해방정국시기에 토지개혁문제가 시급하게 다뤄졌는데, 천주교회 입장에선 주요 소득원이자 선교활동의 무대였던 토지를 빼앗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고 짚었다. 


1946년경 북한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지역교회 토지도 몰수당하기 시작했고, 교회는 북한 당국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반공주의가 전면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천주교회가 한국전쟁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이는 ▲친일파 낙인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 드러난 결과 ▲북한 토지개혁에 대한 반발 ▲반공주의가 다른 요인들과 결합된 결과 ▲제도중심적 교회관 반영 등의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분단 과정에서 천주교회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살폈다. 천주교회는 친일세력에서 애국세력으로 변화했으며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시혜자가 됐다. 한국사회 내에서는 주류 종교로 탈바꿈했다. 


반면, 한국전쟁으로 인명피해가 컸으며 북한 지역 교회를 통째로 잃게 됐다. 또한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는데 이는 남북분단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교회가 과거의 모습을 반추하고 성찰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과거사를 솔직히 인정하는 작업을 통해서 보다 떳떳하게 민족 앞에 복음을 선포할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 교회 모습을 통해서 성장주의에 대한 경계를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맞이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천주교회의 행동은 세상으로부터 그 진정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해를 위해선 참회가 먼저 요구돼 


▲ 천주교 의정부교구 강주석 신부 ⓒ 문미정


천주교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이자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인 강주석 신부는 미군정과 분단 정권 수립,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분석했다. 


교회의 어두운 과거를 성찰하는 이유는 비난과 단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따르려는 그리스도의 평화에 접근하기 위한 것


강주석 신부는 발제에 앞서 이 같이 밝히고, “화해를 중재하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화해해야 하고, 화해를 위해선 참회가 먼저 요구된다”고 말했다. 


강 신부는 좌익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남한 사회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미군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한국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미군정 전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남한 천주교회도 미군정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남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면서, 1947년 교황청 순시자로 임명된 패트릭 번 주교는 천주교회와 미군정의 협력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맥아더 장군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번 주교와 미국인 선교사들은 미군정에 협력하면서 한국천주교회 뿐 아니라 남한의 정치적 상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국천주교회는 같은 민족 사이에 벌어진 한국전쟁을 성전(聖戰)으로 규정했는데, 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의 참전을 독려하고 주도적으로 ‘가톨릭 부대’를 조직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처럼 천주교회가 한국전쟁을 성전으로 규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제강점기 동안 국가의 침략전쟁 수행에 무비판적으로 협력했던 경험, 공산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증오는 한국 천주교회가 무력 사용에 대해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 문미정


또한 국내외에서 한국전쟁을 ‘십자군 전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순교자 담론 형성과 함께 더욱 구체화됐으며, 전쟁 희생자를 순교자로 인식하면서 성전이란 성격이 더 확고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강주석 신부는 과거 교회가 약자들의 고통에 함께 하기 보단 교회를 지키고 세력을 유지하는 데만 신경 썼다면 이제 과거를 참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주교구 김인국 신부, 서울교구 나승구 신부, 예수회 김연수 신부가 발제에 대한 논평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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