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주교대위원회(이하 주교시노드) 기간 중에는 주교가 아닌 이들이 시노드에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서품을 받지 않은 남성 수도자 2명은 투표권을 얻고, 수녀 7명은 참관인으로 시노드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어째서 남성 수도자만 투표권을 부여받느냐’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이번 시노드에 참여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이 중에는 여성이면서 사제인 그리스도인도 있었다.
바로 체코 후스(Hussites)파 사제 마르티나 빅토리에 코펙카(Martina Viktorie Kopecka, 32세)다.
후스파는 보헤미아 왕국(체코) 출신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 1369-1415)⑴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교 교파로,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종파다.
코펙카 신부는 이번 주교시노드에 투표권이 없는 그리스도교 형제 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다.
‘형제 대표’란 로마 가톨릭교회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그리스도교 형제로 간주되는 교파들로 통상 개신교, 정교회 등이 형제 대표로 분류된다.
이번 주교시노드에는 동방 정교회를 총괄하는 세계 총대주교청, 루마니아 정교회, 루터교세계연맹, 233개 개신교 교단이 참여하는 세계개혁교회협의회(WCRC) 및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형제 대표로 참석했다. 코펙카 신부는 세계교회협의회 젊은이위원회(Commission on Youth) 대표 자격으로 이번 주교시노드에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 세계교회협의회 설립 70주년을 맞아 세계교회협의회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에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방문한 바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젊은이위원회 대표이자 여성 사제라는 신분 안에서 나를 인정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 일간지 < La Croix >는 지난 28일 주교시노드 폐막을 앞두고 코펙카 신부와 인터뷰를 했다. 코펙카 신부는 이번 주교시노드에 대해 “인상 깊었다”며 주교시노드 논의들이 “순전히 이론적인 논의가 아니라 나눔과 진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코펙카 신부는 여성 사제로서 자신의 참여가 “우리의 공통된 교회일치 여정으로 나아가는 큰 발걸음”이라고 표현하며 “세계교회협의회 젊은이위원회 대표이자 여성 사제라는 신분 안에서 나를 인정해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요한 문제에 대해 평화롭고 존중을 갖춘 대화가 필요하다.
코펙카 신부는 자신의 고국인 체코의 상황에 대해 “매우 세속화된 국가”라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 아예 알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코펙카 신부는 이번 주교시노드에서 정말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냐는 질문에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며 “이들의 참여는 신앙과 희망, 사랑으로 가득한 증언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주교시노드에서 치열하게 논의된 교회 내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 코펙카 신부는 “나는 여성 서품에 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인정하지만, 교회 내 여성의 역할에 관한 이 주요한 문제에 대해 평화롭고 존중을 갖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⑴ 얀 후스(Jan Hus, 1369-1415)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앞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요구했던 보헤미아 종교개혁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얀 후스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앞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고, 자국어로 강론과 성서 봉독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교황의 절대 권력을 비판했다.
보헤미아 종교개혁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인 중세 후기에는 세속 군주들의 영토 확장 및 재산 축적에 따라 교황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종교권력과 속세권력이 갈등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프랑스가 권력을 이용해 프랑스 출신 교황을 수차례 선출하고, 교황들이 로마를 벗어나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렀던 ‘아비뇽 유수‘와 교황이 다시 로마로 돌아간 이후에도 프랑스에서는 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대립교황을 선출하는 ’서방 교회 대분열‘(The Great Schism)까지 벌어졌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