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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남산에서 ‘안중근의사’를 만나고서
  • 전순란
  • 등록 2018-11-05 11:35:37
  • 수정 2018-11-05 1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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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일 금요일, 맑음



매일 돈 버느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도 또 나가려니 힘들기도 하고 보스코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캐나다에서 돌아온 친구에게 시간을 내주고 그동안 밴쿠버에서 지낸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내 할 일이기에 딴 생각은 툭 털어내고 대문을 나선다. 한목사와 상옥씨랑 우선 ‘숭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문 옆으로 그렇게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새로 손질하고 나서는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어, 오늘 남산행은 그곳부터 보자고 했다.


숭례문은 ‘한양도성’ 4대문 하나로 도성 출입에 쓰인 성문인 동시에 사신을 맞고 배웅하던 나라의 정문이다. 우리나라 성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문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성문이기도 하다. 태조 때 시작한 건물로 창건 600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고난 속에서도 건재했는데, 2008년 2월 10일에 발생한 방화로 타버렸고 2013년까지 복원하여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보안과 관리를 위해 파수꾼을 3명 두었다. 그중 하나 옆을 지나가는데 차렷 자세 그대로 ‘사진 같이 찍어도 돼유’ 한다. 쭈뼛쭈뼛 다가가니까 ‘팔장두 껴두 돼유’ 그제야 막내 같이 귀여운 총각 파수꾼과 사진도 찍었다.


남대문시장을 지나 남산터널 앞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걸어서 김구 선생 동상 앞까지 갔고 거기서 ‘남산에 오시면 저를 찾으세요’하던 여인 순재씨를 전화로 불렀다. “나 김구 선생 동상 앞인데요” “나도 그런대요” 우리는 달려가 얼싸안았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앙상한 그니의 가녀린 몸피가 바싹 마른 가랑잎 같아 울컥 하였다. 우리가 만난 건 슬픈 사연이었지만 그니는 꺾이지 않고 씩씩하게 열심히 살고 있어 늘 고맙다. 


아직도 그니가 어렸을 때 놀았다는 동네, 효자동에 아버지와 둘이서 판자를 사다가 뚝딱 만들었다는 판잣집, 가난한 조카는 집 맨 안쪽 그래도 좀 큰방에 살고, 한 평반짜리 쪽방 셋에선 생활보호대상자 할아버지들이 월세를 내고 살고 있다는 동네도 우리한테 보여주었다. 정말 개미집 같았다.


남산에서 모처럼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세세히 보았다. 그의 어린 시절, 가족과 공부, 투쟁, 여장부다운 모친의 결연함… 특히 처음 거사부터 가톨릭신자인 안의사를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천대하고 나몰라라했던가를 생각하고서 보스코가 크게 분개한 적도 있다. ‘사제단’이 40여 년간 해마다 순국일 기념미사를 바쳐오던 때도 전적으로 무시해오더니 몇 해 전부터는 돌연 그를 시성하겠다나? 



더군다나 요즘 비인간적이고 반민족적인 태도를 발각당하는 중인 양승태일당의 사법농단 떨거지들, 저 보수집단과 반민족언론들, 뻔뻔한 아베 집단들을 모두 데려다 안의사가 재교육을 시켜야 할까 부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퇴직공무원이 한심한 해설을 하고 있어 기가 막혔다. ‘자기는 가톨릭신자다. 성서에 살인하지 말라 했는데, 이또오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살인도 살인은 살인이다’ ‘미치광이 운전자가 명동 보행자거리를 질주하고 있다면 그 자를 죽여서라도 자동차를 세우라!’는 본훼퍼의 논거는 차치하고라도 어쩌다 저런 수구보수를 안내원으로 두었담?


2시가 넘어 점심으로 대구탕을 먹고서 순재씨가 무궁화꽃을 만드는 사무실에 올라갔다. 그니가 심혈을 기울이는 작품을 보면서 ‘저렇게 피어날 수 있는 여인들이 얼마나 남편들의 폭력으로 시들어가고 있는가!’ 탄식하면서 그니들과의 연대에 더 힘을 기울여야겠다고 맘먹는다.


남대문시장을 지나 시청 앞 광장에는 광장 가득 김치가 펼쳐져 ‘서울김장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인들은 육해공(꿩고기, 오징어, 전복, 대구, 전어, 황새기, 가자미 등)을 모두 동원하여 김치로 담가내는 재주가 있음에 감탄했다. 



‘서울시청’을 새로 짓고는 처음 가보았다. 잠자리 눈깔 밑에는 온갖 공간이 있었고, 최목사님이 하는 ‘트립티. 공정무역 카페’도 있어 다리를 쉬며 커피 한잔을 하고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종일 매연 속을 14km나 걸었는데도 별로 피곤하지 않은 건 친구에 폭 빠졌기 때문이다.


집에 오니 보스코는 오후 늦게 상도동으로 함신부님을 만나보러 갔다 저녁을 먹고서, 함신부님이 엊그제 간행한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을 한 부 들고서 돌아왔다. 


둘이서 또 무슨 일을 상의한지 모르지만 신부님은 사제로서, 민주투사로서, 그리고 지금은 현 정권의 조언자로서 파란만장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신부님이 물려받으신 집을 내놓아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를 이끌어온 분으로서 안의사 못지않은 성직자여서 보스코는 동갑나이의 함신부님을 무척 존경하고 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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