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10월 중순부터 말일까지 다녀왔다. 보름쯤 걸린 여정의 보따리를 풀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쓰는 글을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여유로운 것 같고, 견문록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듯 보여 그냥 ‘시인의 눈길로 본 아프리카 이야기’쯤으로 하련다.
‘대략난감’한 아프리카 일정
먼 곳이었다. 이런저런 영화 혹은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아프리카 대륙이었지만 그곳은 낯선 하늘과 낯선 땅, 낯선 물빛이었다. 단지 하나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올 때까지 위안이거나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아프리카에도 우리와 별 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던 길은 쉽게 되새겨지지 않았고, 아프리카인들과 헤어져 돌아 나온 길은 곧장 현실감에서 사라졌다. 과연 그곳을 실제로 다녀온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여정이었지만 떠나는 순간까지도 도착이후의 일정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대략난감’한 보름 일정이었다. 그만큼 여러 변수를 예상한 길이었다. 그 변수는 상수로 작용했다. 떠나기 전까지 아프리카 내륙 국가이며 최빈국의 하나인 말라위 Malawi는 손에도, 마음에도 잡히지 않은 채 둥둥 떠다녔다. 그곳에서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인을 만나고 현재까지의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이 이번 여정의 주목적이었다.
드디어 아프리카다!
인천공항에 모인 일행 9명의 손에는 그곳의 어린이들에게 전달해 줄 물품들이 들렸다. 항공사가 무료로 화물처리해주는 기준에 맞추어 1인당 2개씩의 박스는 팝콘 터질듯 한 긴장감이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물품의 내용보다 가지고 가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지원해 줄 물품은 값비싼 것으로 별도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지인들과 단체에서 기부 받은 학용품, 모자, 운동복, 신발, 사탕류 등이지만 현지에서는 그마저도 귀하게 쓰임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행을 실은 비행기는 일단 태국 방콕으로 날아갔다. 그곳 환승구역에서 케냐 나이로비행 비행기를 탄 것은 새벽 1시 15분이다. 타자말자 이내 눈을 부치려 했지만 고공에서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은 시간만 되면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여건이 맞아야 잘 수 있는 것을 깨닫는다. 늘 깨달음은 허둥지둥 다가선다. 7시간동안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동안 비행기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아프리카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아프리카인이었을까?
케냐 나이로비 환승구역에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두개골부터 다리뼈까지 조립된 형태의 유골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른바 현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직립원인(直立猿人) 호모 에렉투스다. 고고학적으로는 인도네시아 자바와 중국 베이징에서도 직립원인의 유골이 발견되었지만 호모 에렉투스는 수십 만 년 동안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서 생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아프리카인이었을까?
인류의 조상들이 살던 곳에서 그들의 후손이 겪으며 지나온 과거 역사와 오늘의 상황을 살펴본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마치 이주민이 원주민을 못살게 굴듯이 아프리카 대륙과 그곳의 사람들, 심지어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근대와 현대의 서구문명이 저지른 일은 한마디로 죄악의 역사이고 무력을 앞세운 식민과 약탈의 연속이었다.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말라위 수도 릴롱궤로 들어가다
케냐 나이로비공항에서 다시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는 5시간동안 마주친 아프리카인의 수는 평생 만난 아프리카인들 보다 더 많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조용했다.-나는 무슨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나라나 사람들의 언행과 행동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떠나올 때까지 공공장소와 거리에서 마주친 아프리카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음성이 낮았고 조용했다. 왜일까? 지금도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구석이다. 환승의 최종 목적지는 아프리카 내륙국가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Lilongwe)였다. 몇 나라를 거치고, 출발부터 몇 시간이 흘렀는지 헤아릴 이유는 없었다. 단지 한국보다 7시간의 시차를 가진 이곳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내린 마음과 별 차이가 없었다.
취학 전 아동들을 위한 데이케어센터가 있다는 ‘말라위’라는 나라 이름을 듣고 나서야 그런 이름의 나라를 처음 알았다. 지도상으로 본 말라위는 좁고 긴 국토를 지닌 내륙이었다. 나라의 북쪽은 탄자니아, 동쪽과 남쪽은 모잠비크, 서쪽은 잠비아와 접해 있었다. 떠나기 전 그 나라에 대한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읽었지만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단지 “왜 그리 가난한 나라”로서 살고 있는지가 가슴으로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정치인의 이름(그가 누구였는지는 별관심을 두지 않았다)을 딴 릴롱궤 KAMUZU국제공항은 겉으로는 그럴싸했지만 입국수속을 하는 곳은 비좁았고 도착비자를 받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했다. 문제는 통관검색이었다. 개인 짐을 제외하고 1인당 2박스 그러니까 모두 23kg짜리 18박스는 세관직원의 관심을 끌었고 그들은 쉽사리 그 물건들을 통관시켜 주지 않았다. 만의 하나를 대비해서 박스마다 영어로 “이 물건은 말라위 어린이들을 위한 학용품과 의류입니다.”라고 적었지만 그것은 말라위 세관직원의 환심을 사지 못하고 단지 세금을 내라고 재촉했다. 이후로도 “이거 뭥미?”의 상황은 떠나는 날까지 이어진다. 다음 주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