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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그 ‘낯설음’, 땅과 인종, 문화와 음식 그리고 과일…
  • 전순란
  • 등록 2018-12-07 10:54:18
  • 수정 2018-12-07 10: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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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4일 화요일, 맑음



나라가 다르면 사람만 다른 게 아니고 풍습과 문화, 그 땅에서 나오는 음식과 과일 마저도 많이 다르다. 요즘이야 백화점 뿐 아니라 웬만한 큰 마트에서도 먼 나라 열대과일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흠이라면 가격이 비싸다는 것과 현지에서와 똑같은 싱싱한 맛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현지에 가면 음식은 물론, 꼭 그곳 특유의 과일을 맛보고 싶다. 엊저녁에도 카투만두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대충 저녁은 했고, 쿤밍의 시내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한목사와 같이 과일가게로 직행했다. 모양에 따라 맛도 다르고,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우에는 겉이야 보이지만 과일 속살과 맛을 알 수는 없어 사다 먹어봐야 한다. 


착한 중국아가씨에게 ‘과일 맛 좀 보자’며 먹음직한 과일들을 좀 사서 호텔방에 올라갔다. 사방에 울통불퉁 뿔이 나거나 과육에 비해서 유난히 씨앗이 큰 과일, 벌건 과육에 또는 수도 없이 박혀있는 씨앗이라든가 유난히 물컹하거나 식감이 이상해서 때로는 냄새까지 고약하여 토할 것 같은 맛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낯설음’이다.


이국 땅에서 맞딱뜨리는 낯설음이 어디 음식이나 과일 뿐이겠는가? 내 주변에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잘 사는 친구들도 많지만 늙어갈수록 (외국인)남편이 더 생소해지고 밤에 자다가 눈이라도 떠서 옆에 누운, 내 동포들과 다른 얼굴에 다른 피부를 한 남자를 보자면 잠이 확 깨고 ‘내가 왜 여기 이렇게 있지?’ 스스로 묻기도 한단다.



열흘을 외국 땅에서 거닐다 오늘은 낯설지 않은 내 땅으로 돌아가는 날. 두 발로 딛고서 내 발로 똑바로 걸어갈 낯익은 땅이 날 기다린다.


쿤밍의 중국호텔에서 잠을 깨어 아침식사로 흰죽을 조금 먹고 계란 한 개와 중국빵으로 아침을 했다. 8시 30분 호텔이 마련해준 봉고에 짐을 싣고 운남성 쿤밍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보냈다. 집에까지 보냈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기만 하면 된다. 짐을 끌고 다니는 유목민의 고된 생활도 오늘 밤으로 끝이다. 


직항을 타면 비행시간은 절반만 들지만 돈은 두 배가 든다니, 몸으로 떼운 셈이다. 쿤밍 비행장에는 ‘장가계’ 등에서 5박 6일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노라는 정읍 아줌마가 하는 혼잣말. ‘집을 나오면 개고생이여. 뭘 하겠다고 이렇게 기어 나왔는지, 내 참. 먹지도 못하고 돈 내버리고… 이건 미친 짓이여! 억지로 하라면 돈 준다고 해도 못할 일이여!’



내가 찬찬히 생각해도 개고생을 하긴 했는데, 조금도 억울하지 않은 건 스스로 선택한 여정이기에, 그 여정 하나하나가 뜻 깊은 만남들이었기에 고생이 고생이 아니었다. 범상한 관광여행으로는 만나볼 수 없었던 현지인들과의 우정이 각별히 아름답다.


상해에서 4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넷 모두에게는 독서의 시간이었고, 인천공항에서는 박미성 선생이 남편 목사와 우릴 마중 나와 우이동 집까지 데려다 주어 감격이었다. 열흘 만에 돌아온 집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트리가 반짝이며 환하게 맞아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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