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2일부터 8일까지 성직자 성범죄 추문을 반성하며 피정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서 교황은, 지난 해 미국을 뒤흔든 성직자 성범죄 추문에 대해 강하게 질책하며 “우리가 돌보아야 할 이들이 희망을 잃고 영적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포용 방식”을 주문했다.
교황은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성직자 성범죄와 그 은폐를 해결한다는 것은 “공동체로서 우리(주교들)의 결정과 선택, 행동과 의도가 내부적인 갈등으로 물들지 않도록 하고 이것이 주님에 대한 응답이 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마르 10,43)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가톨릭교회가 여러 추문들로 인해 신뢰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러한 추문이 사제, 수도자, 평신도에 의한 권력 남용과 양심 남용, 그리고 성범죄로 직접 고통을 받은 모든 피해자들에게는 격동의 시기였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 같은 ‘죄와 범죄’ 뿐만 아니라 ‘이를 부정하거나 숨기려는 노력’으로 인해서 미국 가톨릭교회의 신뢰가 더욱 추락했다고 질타했다. 특히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은폐하려는 마음가짐 때문에 문제는 곪아터져 오히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큰 해를 끼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죄와 범죄, 그리고 그 반향이 신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주교들의 일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분열과 흩어짐을 초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 성범죄 문제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련된 뼈아픈 문제”들을 제기한다면서, 성직자 성범죄 문제 해결은 “유대를 형성하고 건강하고 성숙하며 각자의 양심과 사생활을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주교들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활동 계획은 활동에 내재된 정신과 의미를 드러내주는 패러다임과 함께 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보존적 태도, 방어적 자세로 물들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주교들이 성직자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가장 막중한 임무는 ‘타협’이나 ‘투표’를 통한 상대적 평온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통된 식별의 정신을 기르는 것’이라며 “현재 상황을 공동체적이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포용할 수 있는 방식, 즉 우리가 돌보아야 할 이들이 희망을 잃고 영적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포용 방식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뢰가 미국 주교들의 명성, 평판을 토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한계를 인정하되 동시에 회개의 필요성을 선포할 수 있는 일치된 지체의 결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지난 8월 성직자 성범죄와 관련해 발표한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1코린 12,26)라는 구절을 다시 인용하여 “교회의 가톨릭 정신은 목자로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신자들과 감정적으로 일치하면, 벌어진 일의 규모와 그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방해가 되는 고정관념에 기대지 않게 될 것.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과 감정적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교들이 “폄하와 비방 또는 관계 안에서 피해자인 척하거나 훈계자 노릇을 하려는 행동양식(modus operandi)을 버리고자 하는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르 10,43)
프란치스코 교황은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과 교회의 사명은 권력 남용과 양심 남용, 성범죄 그리고 이 문제들이 형편없이 다뤄지는 바람에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지금까지 미국 주교들이 성직자 성범죄를 다뤄온 방식을 질책했다.
우리가 사람들의 목자, 아버지, 스승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형제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대화는 우정으로 발전하고, 특히 섬김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성 바오로 6세, 『주님의 교회』(Ecclesiam suam), 1964, 87항)
교황은 성직자 성범죄를 해결하는데 있어 주교들의 역할을 설명하며 이 같은 성 바오로 6세의 발언을 인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성직자 성범죄로 잃어버린 신뢰는 믿음에서 비롯되며, 믿음은 모든 이에 대한 진심어린 섬김, 특히 주님이 가장 아끼시는 이들에 대한 섬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거나 칭찬을 듣기 위한 마케팅이나 전략에서 나오는 섬김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직면한 이 일은 너무나도 섬세한 것이다. 우리 한계와 잘못 때문에 이에 대해 침묵하거나 이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다가왔을 때 일치의 부재, 분열, 그 시간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유혹이 제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유혹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며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이들이 하나 되는 날 누구 하나 빠지지 않도록 이들을 돌보아달라고 간청한 것(요한 17,11 참조)”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도와 침묵, 묵상, 대화와 일치, 경청과 식별의 시간을 시작하며 우리 주교들은 주님께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고 강조하며 서한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