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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공소식구들 두부해먹기
  • 전순란
  • 등록 2019-01-25 14: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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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4일 목요일, 맑음



공소식구들이 두부를 함께 해 먹기로 해서 모니카가 농사지은 콩을 내고, 가리점에 있는 비비안나네 집에 두부 만드는 기구가 있어 그 집에서 모여 두부를 만들기로 했다. 당산나무 앞에서 내 차로 콩과 사람을 싣고 가기로 해서 12시 30분에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드물댁네서 마르타 아줌마가 나오는데 다리를 심하게 전다. 아줌마네 집담과 유영감네 논두럭이 붙어 있어 유영감네 논을 정리하다 아마 자기네 경계를 침범할까봐 담 싸는 걸 거드는데 무슨 돌을 들다 너무 무거워 그만 자기 발 위에 떨어뜨렸단다.



남을 돕다, 남의 일로 내 몸이 다치면 자신의 탓보다 원인제공자가 더 원망스럽다. 나도 작년 여름 우리 텃밭을 지나 유영감네 논으로 물대는 파이프가 지나가게 했는데 그 논의 물이 한길로 넘쳐 시멘트길에 이끼가 끼었고 그 이끼에 미끄러져 핸드폰 액정은 깨지고 벌렁 넘어져 어깨 인대가 늘어나 지금까지도 왼쪽 어깨에 통증을 느낀다. 


나는 남이 자기 논에 물대게 허락하는 착한 일을 했고 넘어진 실수는 내 책임인데도 물을 넘치게 해 한길 시멘트바닥에 이끼가 끼게 만든 유영감의 잘못이 더 커보였다. 이끼가 끼었어도 그 길을 다니는 사람 중 유일하게 나 혼자 넘어졌는데 말이다. 그 점을 깨우치고 나를 설득하면서 유영감을 원망하는 마음을 거두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핸드폰을 새로 사야 하는 경제적인 문제와 어깨가 늘 아프니까...



그러니 마르타 아줌마의 원망은 당연하다. 걷기에 힘들 것 같아 유림 ‘한마음병원’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는데도 아줌마는 계속 마다한다. 미안해서 안 된단다. 그래서 내가 심하게 화를 냈다. 차에 함께 탄 사람들이 내가 화내는 걸 보고는 놀라지만 까닭이 있다. 5년 전 점심무렵에 경운기가 엎어져 남편이 기계에 깔려 죽어가는 데도 우리 식당채에 와서 들여다보니 점심을 먹고 있기에 미안해서 말을 못 했다던 생각이 나서 내가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낸 것이다. 그니의 동방예의 땜에 남편이 죽었는데 말이다.


모니카, 까밀라, 안젤라 세 아줌마는 가리점 산속에 있는 비비안나네 내려주고, 내가 화를 내자 내 기세에 눌려 조용해진 마르타 아줌마는 화계까지 얌전히 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에는 창밖으로 청둥오리 노는 걸 보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을 보며 소풍 나온 소녀처럼 신나 한다. 아까 화낸 게 미안해서 '아줌마 밖에 나오니까 좋지요!'라고 하니까 딴 대답을 한다. 


‘내는 이 동네에 아무 연고도 엄고,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줄 사람도 엄서 혼자 모다 해야 혀. 내는 누구한테 부탁할 숫기도 엄고 그저 안 될 것만 같아 미얀해서 말도 몬 꺼내. 자식들에게도 성가셔 하는 것 같아 말을 몬한다고... 그런데 이제 사모님한텐 뭔가 도와 주라고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아...’ 친정도 멀고 보잘것없이 살아온 외로운 여인이 얼마나 주눅 들어 살아왔는지 가엽기만 하다. 마르타 아줌마는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어 한 열흘 걸리면 나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





비비안나네 집이 위치한 ‘가리점’은 ‘사방이 산으로 가려져 있다’는 뜻으로 지어진 골짜기로, 첩첩 산속에 숨어 자기네만 산다. 주인 내외는 설 전 택배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지만 공소식구들이 한데 모여 ‘엊저녁부터 불린 콩을’ ‘기계에 갈아서’ ‘가마솥에 끓여서’ ‘콩물을 짠다’. ‘그 콩물을 솥에 다시 부어 뜨겁게 온도를 유지해 가며 간수를 넣는다.’ ‘간수로 잘 엉키게 한 다음’ ‘모판에 망을 펴고’ ‘엉킨 순두부를 부어’ ‘눌러서 숨물을 짜낸다.’ 



너무 누르면 딱딱해지므로 적당히 눌러야 한다. 간수를 너무 많이 넣으면 써지고 덜 넣으면 엉기지 않기에, 간수의 양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흰콩 큰 되 닷 되에 간수물 300CC 정도면 될 것 같다. 공소 아홉 가족에게 큰 밥공기만한 두부가 세 모씩 돌아갔다. 노동의 결과로는 좀 부족한 듯하지만 함께 두부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한 공동체라는 점을 다지는 시간이기에 즐거웠다.



저녁에 미루가 와서 작년처럼 매화나무 가지를 잘라가고, 보스코의 핸드폰 샤오미에서 컴퓨터로 사진을 전송하는 랩을 깔아주려다 잘 안 돼 카카오톡을 이용하기로 했다. 미루네가 없으면 핸드폰도 못 쓰는 두 늙은이 돌보느라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 다행히 넷이서 유황오리 죽을 먹고 헤어졌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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