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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몬타누스파, 그리고 여자 예언자들의 눈부신 활약
  • 전순란
  • 등록 2019-01-30 11: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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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8일 월요일, 맑음



사람을 사귀는데도 긴 세월을 함께 하다보면 곰삭은 음식처럼 깊고 은은한 맛이 난다. 어떤 사람들과는 뜰에서 갓 뜯어온 푸성귀 겉절이 같은 신선하고 풋풋한 맛이 있어 좋지만, 역시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은 세월 속에 녹아 있다. 내게 그런 맛을 내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이다.


90년대 ‘우리밀살리기운동’을 같이 시작하며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다. 기쁜 일, 슬픈 일 억울한 일, 신나는 일 모든 것을 함께했거나 같이 보아왔다. 미련하도록 정도만 걸어 온갖 고생 다하고 부인에게는 그럴싸한 호강 한번 못 시켜줬는데도 무슨 복에 아내의 변함없는 조력을 받는 그분을 보면 부부가 공동운명체임을 절감한다. 


작년에 카농회장직을 수락하며 열악한 재정사정에 비상근을 하겠다면서 월급도 마다하고 봉사직으로 시작했다. 부인 말로 자기 집에서 구미 KTX 타러 오가는 차비는 제하고도, 기차삯만 일 년에 500백만 원이 들더란다. 집안일은 아내에게 몽땅 미루는  남편을 묵묵히 거둔 그니가 내 눈엔 더 대단하다.


자주 보지 못해도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이기에 기회가 있으면 꼭 챙기는 사이다. 오늘 왜관 분도수도원에서 1박2일 ‘교부학회’가 있어서 가는 길에 성주에 들러서 만났다. 환한 웃음에 즐거운 대화, 옛날이야기 요즘이야기 정치이야기 아이들이야기…, 그리고 그때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근황을 들으며 잘된 사람들 얘기에는 신이 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사람들 얘기는 서글프다. 


‘백남기 어르신’ 사건이 촛불혁명으로 이어졌기에 카농의 할 일은 아직도 많은데 대통령 혼자 다 못하고, 주변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걱정도 하다, 못 다한 말은 나중에 하자하고 아쉬운 걸음으로 헤어졌다.


2시에 분도수도원에 피정의 집에 도착하니 1년에 한 번씩 만나지만 같은 분야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로서 서로를 알아보는 마음들이 반갑다. 제25차 한국교부학연구회 모임.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공부한 부산교구 장재명 신부님이 ‘몬타누스주의와 테르툴리아누스주의’에 대한 학술발표가 있었다.



‘몬타누스주의’란 2세기 중반에 소아시아 프리기아지방에서 나타나고 발전한 예언운동이다. 이 운동의 창설자 몬타누스는 성령의 인도로 황홀경에 빠져 예언을 하는데 특이한 점은 남성들이 주를 이룬 종교계에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라는 여자예언자의 눈부신 활동이다. 이들은 사도들보다 뛰어난 예언자로 대접을 받았는데 가톨릭교회의 여성에 대한 태도와 비교가 된다. 후대에 가톨릭이 그리스도교의 주류가 되며 몬타누스주의를 이어받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이단처럼 혐의를 받기 시작하는 게 이 여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바람에 그렇게 배척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테르툴리아누스 태도가 차별 없이 가톨릭에 받아들여졌다면 지금처럼 여성혐오의 종교가 아니고 여성사제 문제도 전혀 시비가 없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테르툴리아누스가 복권된다면 교회의 여권도 복권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저녁 6시. 분도수도원 성당에서 저녁기도 성무일도를 분도회 수사신부님들과 함께 바쳤다. 수사님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장엄한 모습에서 나는 엄숙함을 느꼈는데, 보스코는 맨 앞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기와 동년배의 신부님 수사님들이어서 많이 슬펐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문지기 수사님은 ‘맨 앞에 서서 가다가 맨 먼저 하느님 나라에 지체 없이 갈 수 있으면야 더 없이 좋겠다’고 하신다. 삶과 죽음을 가르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그 모습에서 참다운 수도자의 모습을 본다. 80년대부터 이 수도원에 와서 먹고 자고를 거듭하던 나는 옛날의 문지기 미카엘 수사님이 106세로 몇 달 전 돌아가신 소식에 어차피 하느님의 품이니 이승이든 저승이든 가깝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며 피정의 집으로 돌아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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