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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생후 7개월 손자에게서 처음으로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었습니다
  • 지요하
  • 등록 2019-02-18 10: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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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뱃돈 세뱃돈을 받고 활짝 웃음 짓는 손자 녀석 ⓒ 지요하


지난 주말(9∼10일) 다시 대전에 가서 오늘(2월 15일) 생후 7개월째로 접어드는 손자 녀석을 보고 왔습니다. 


설 연휴 때는 대전에서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태안에 오겠다고 하는 걸 내가 굳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태안에는 중국 발 황사도 쉽사리 닿는 곳인데다가 가까이에 3개 화력발전소(당진 보령 태안)에 포위된 형국이라서 미세먼지도 많으니 아기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내 옆에서 아내는 아들에게 요즘 ‘홍역’이 도는 것도 염려된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러자 아들은 저 혼자만이라도 잠깐 다녀가겠다고 했으나, 연휴 기간이나마 아이 엄마 손을 쉬게 할 겸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라고 다시 당부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명절에 제례도 지내지 않고 모두 성당의 위령미사에만 집중하기로 했으니 며느리의 손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그 대신 연휴 기간이 지난 주말에 우리 부부와 아직 미혼인 딸이 함께 대전에 가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장거리 운전을 주로 딸이 해줍니다. 


아기 손자 녀석의 웃음 세배  

 

▲ 세뱃돈 할아버지가 건네는 세뱃돈을 한 손으로 받는 손자 녀석 ⓒ 지요하


지난 토요일(9일) 대전 전민동성당 근처 아파트에서 사는 아들 집에 들어서면서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고모를 방실방실 웃음으로 맞아주는 손자 녀석을 한결 환해진 눈으로 보았습니다. 마치 반가워하는 듯이 방글방글 웃음 짓는 손자 녀석을 내가 먼저 안아주며 처음으로 녀석의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녀석은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도 웃고, 할머니 품에 안겨서도 웃고. 고모에게 안겨서도 소리를 지르며 웃었습니다. 아이 덕분에 순간순간이 그저 기쁘고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시는 사돈 내외분이 오셔서 함께 저녁을 나누었습니다. 태안에서 가져간 간장게장, 아귀 탕과 아귀 찜, 새우전, 감태 등을 모두 즐겁게 감식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는 세배 행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먼저 아들과 며느리의 세배를 받았고 처음으로 손자 녀석의 세배를 받았습니다. 손자 녀석은 아빠의 도움을 받으며 엎드린 자세로 절을 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가 차례로 녀석에게 세뱃돈을 주었습니다. 


손자 녀석은 작은 손으로 세뱃돈을 받으면서도 방실방살 웃었고, 손에 쥔 지폐를 유심히 보다가 또 방실방실 웃었습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이 너무도 예뻐 우리 가족은 서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카톡’으로 공유한 그 사진들을 집에 돌아와서 자주 보곤 합니다. 이미 지난 6개월 동안의 수많은 사진들이 내 스마트폰 안에 저장되어 있지만, 지난 주말 대전의 아들 집에 가서 찍은 사진들이 한결 재미있고 절로 웃음 짓게 합니다. 


손자 녀석 사진들을 다시 보다보니, 그간 병고를 겪느라 오래 쓰지 못했던 글을 다시 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자니 자꾸 손가락이 실수를 하는군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  


▲ 세뱃돈 세뱃돈을 받은 손자 녀석(좌) / 세뱃돈 세뱃돈을 손에 쥐고 유심히 들여다보는 손자 녀석(우) ⓒ 지요하


나는 나이 마흔에 결혼했고, 딸 다음에 아들, 두 남매를 얻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병역의무를 마친 다음 직장을 얻어 대전에서 살게 됐고, 전민동성당 청년성가대에서 만난 며느리와 2017년 4월 결혼을 했습니다. 


아들에게서 결혼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아직 미혼인 누나도 있고 네 나이 서른도 안됐는데 왜 그리 결혼을 서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내년이면 연세 일흔이 되시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순간 아들이 고맙게 느껴지면서 불현듯 60대 중반 연세로 별세하신 내 선친 생각이 나더군요, 나는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얘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보지 못한 너희들에게도 미안하고, 손녀 손자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선친께 죄스러운 마음이 한량없다는 말도…. 


늦게 결혼하여 얻은 자식들이어서 더욱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길렀습니다. 옛날 청년 시절 옆집 아이를 나무 예뻐해 주니까 이웃 어른들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남의 집 아이도 저리 예뻐하니 훗날 결혼해서 아이들 낳으면 아이 볼이 남아나지 않겠다.”                             


그 아주머니 말대로 나는 내 아이들을 끔찍이 예뻐해 주면서 어느 날 불현듯 자식들에 대한 어미 아비의 사랑, 모성애와 부성애는 하느님께서 주신 마음, 곧 ‘하느님 마음’이라는 생각도 하게 뙜습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내가 하느님 같다>라는 시를 한 편 지어서 2010년에 출간한 첫 시집의 표제작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하느님 마음’으로 자식을 길러야 합니다. 또 그 자식에 대한 사랑을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나누어야 합니다. 언젠가 인터넷 매체 지면에 쓴 글에도 담긴 내용이지만, 매번 함께 목욕탕을 가던 아들 녀석이 둥지 밖에서 생활하게 되어 나 혼자 덕산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던 중 불현듯 세월호 안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어미 아비들이 생각나서 돌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나처럼 매번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가다가 자식을 잃어 혼자 목욕을 하며 허전해하고 쓸쓸해 할 아비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샤워기 앞에서 마구 눈물이 흐르더군요. 


나는 70고개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손자 녀석을 보게 해준 아들과 며느리가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또 손자 녀석을 안아주고 예뻐해 줄 적마다 아들과 며느리가 더욱 고마워지고,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손자 녀석이 사랑스럽기 한량없습니다. 그럴 때도 내 마음의 한 구석은 5년 전 ‘세월호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애틋해지곤 합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보내주는 수많은 사진들과 동영상들을 보면서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 복된 아이’의 모습들에서 흐뭇함을 느끼곤 합니다. 세월 따라 조금씩 모습들이 변하겠지만 그 변함 속에서도 좋은 부모, 행복한 아이의 모습이 오래 유지되고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하곤 합니다.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없기를…

 

얼마 전 보도를 통해 알게 된 일인데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젊은 아빠(24살)가 생후 22개월 된 아들을 야밤에 공원에 남겨두어, 아이가 12시간 만에 주민들에 의해 구조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몸 곳곳에 담뱃불 자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기사를 접하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의 사는 곳을 수소문하여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담뱃불의 뜨거움은 당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 어린 아이가 제 아비에게서 당했을 가공할 정도의 학대와 고통, 밤에 혼자 버려져 밤새 겪어야 했을 공포와 슬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등이 절절히 상상되어 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이 대목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눈시울이 젖고 또 젖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린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도 있나 봅니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도 있는 반면 자식들을 외면하고 이혼을 하고서는 양육에 대해 서로 나 몰라라 하는 부모들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식들을 결코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자식에게 고통을 주거나 슬픔을 겪게 한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지금은 ‘금수저’, ‘흙수저’를 따지는 세상이지만, 어떤 처지에서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 ‘하느님 마음’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난 주말 또 한 번 대전에 가서 생후 7개월째인 예쁘고 귀여운 손자 녀석을 안아주며 ‘천사의 웃음’을 대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오늘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해량을 바랍니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함.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음.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 수상.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함.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공동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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