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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다, 역사를 보다
  • 이기우
  • 등록 2019-02-20 12:49:26
  • 수정 2019-02-20 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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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사도요한 신부의 매일강론입니다. 이기우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3년간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지난해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깨달음, [이신부의 세·빛]으로 매일강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창세 8,6-13.20-22; 마르코 8,22-26



오늘 복음은 눈먼 이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데리고 온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두 번에 걸쳐 그의 눈에 손을 얹으심으로써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이로써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은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들과 만나서 일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자유는 해방을 가져다줍니다.


사람들 중에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영적인 현실이나 세상 사람들이 과거에 이룩한 역사적 현실이 그렇습니다. 영적이거나 역사적인 현실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해방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눈뜬장님의 처지라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계속해서 노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노아는 아내와 삼 남매와 그들의 배우자를 합해 모두 여덟 명이 이 방주에서 대홍수로 심판 받는 세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자에서 찾아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세기에 중국에 선교하러 갔던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한자를 배우다가 매우 신기한 특징을 발견해 냈습니다. 한글처럼 영어는 표음문자(表音文子)이지만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子)입니다. 글자마다 뜻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도 신기했지만 공자 이전의 원시 한자에 노아의 방주를 비롯한 창세기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 의하면 한자로 배를 뜻하는 ‘배船’자에는 일반적인 모든 배를 가리키는 ‘배舟’자 옆에 여덟을 표시하는 ‘八’자와 사람을 표시하는 ‘입口’자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한자가 노아의 방주를 뜻한다는 겁니다. 제사를 드리는 예절을 뜻하는 ‘예禮’자도 하느님을 뜻하는 ‘시示’변에 제단 위에 놓인 풍성한 곡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약 이백 여 글자가 창세기 설화를 담고 있다고 하지요. 저도 2012년에 하와이 마노아 한인성당과 명동성당에서 안경렬 몬시뇰의 특강을 나중에 전해 듣고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 후에 서점에 가 보니 이미 그에 관한 여러 원서들이 출판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구입해서 확인했던 책은 윌더(G.D.Wilder)와 잉그램(J.H.Ingram)이 함께 지은 ‘한자의 분석’이라는 책인데, 원 제목은 ‘Analysis of Chinese Character’입니다. 이 책과 함께 구입한 책은 더 직접적입니다. 찬 케이 통(Chan Kei Thong)이 샤렌느 푸(Charene L. Fu)와 함께 지은 ‘고대 중국에서 하느님을 찾다’(Finding God in Ancient China)에는 더욱 체계적으로 원시 한자군을 분석한 신학적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바벨탑 사건 이후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노아의 후손 중에 동아시아까지 진출한 부족들이 선대의 신앙과 역사를 전하기 위해 글자를 만들었고 그것이 원시 한자로 남아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고 보면 서양문명이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리스도교가 온전히 서양의 전유물은 아닌 겁니다. 역사를 새롭게 보는 눈을 이렇게 원시 한자에 담긴 사연이 뜨게 해 줍니다. 4백여 년 전 중국에 파견된 천주교 선교사 마태오 리치나 판토하 등이 중국 사상의 뿌리인 원시 유학에서 인격적 신 개념인 상제로부터 출발해서 ‘천주실의(天主實義)’나 ‘칠극(七克)’이라는 책으로 중국 지식인들을 설득하려 했다면 2백 여 년 전 중국에 파견된 개신교 선교사들은 원시 한자 연구를 통해서 거꾸로 서양인 자신들이 신앙의 원류가 아님을 확인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자 이래 주자 같은 이들과 주자가 확립한 성리학을 추종하는 퇴계 이황 같은 학자들이 틀을 짜 놓은 형식에 갇혀 막상 천주교의 복음진리가 들어왔어도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를 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당하기는 했지만, 공자도 속했던 동이족의 선조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알지 못했어도 이미 하느님을 알고 믿었던 사람들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한반도의 비옥한 토양보다 정신적으로 더 비옥했던 한겨레의 정신적 토양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과 일본에 전해진 복음과 이 땅에 전해진 복음의 열매가 이토록 차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해 온 우리 민족의 역사에 눈을 뜨면 자연히 하느님이 보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보게 해 주어야 할 이유입니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발원한 그리스도교는 서양을 거쳐 왔을 뿐 본래는 서양 종교가 아니며, 더구나 하느님을 믿어온 역사는 우리가 훨씬 더 오래되고 그 깨달음도 깊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나 영적인 눈을 떠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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