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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교회,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가
  • 끌로셰
  • 등록 2019-02-22 18:23:01
  • 수정 2019-02-22 18: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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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Vatican News)


전 세계 가톨릭교회와 더불어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아온 성직자 성범죄 해결을 위해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들이 모인 회의가 21일(로마 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시작됐다. 


첫날은 ‘책임’을 주제로 성직자 성범죄에 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논의했다. 특히 성직자 성범죄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외면한 주교들의 ‘도덕적 책임’과 더불어 교구를 돌보아야 하는 역할을 맡은 주교들의 ‘구조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집중됐다.


특히 이날은 영상을 통해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회의 중에 성직자 성범죄 해결을 위해 고려해보아야 할 주요사항 21가지를 주교들에게 전달해 논의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의를 청하는 가장 작은이들의 울부짖음을 듣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의 개막 연설에서 이 같이 말하며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사목적, 교회 구조적 책임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하느님의 신성한 백성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느님 백성들은 우리가 단순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처벌을 내리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기를 원하는 것


교황은 주교들에게 ”어느 때보다 가감 없는 정신으로”(spirito di massima parresia) 자신의 책임과 잘못, 그리고 그 해결책을 이야기 해줄 것을 간청했다.


‘양의 냄새 - 목자 역할의 핵심은 그들의 상처를 알고 치유하는 것’


▲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필리핀 마닐라 대교구장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Luis Antonio G. Tagle) 추기경은, 사람들의 상처에 대해 직접 듣고 보고 만져 공감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제 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주교들이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들과 그리스도 지체에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을 겸손하고, 슬픈 마음으로 인정한다. 피해자들을 거부하고 가해자와 교회 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추문을 덮어버릴 정도로 피해자들의 고통에 둔감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이 같이 고백하며 “교회로서 우리는 학대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이들과 함께 걸어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신뢰를 쌓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며, 교회가 정의의 차원에서는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으며, 오로지 치유 과정 속에서 선물이자 은총으로서 용서가 주어질 때만 이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온전히 받아들인 상태에서 끊임없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타글레 추기경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내버리는 관점이 아니라 피해자는 돌보고 가해자는 사법적 심판 외에도 교회 안에서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동행할 수 있는 관점을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범죄 사건 처리 및 예방 책임’


▲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신앙교리성 차관보 찰스 시클루나(Charles Scicluna) 대주교는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주교들의 책임을 설명했다. 성직자 성범죄 처리 방식을 성(性)적 비위 신고, 사건 조사, 교회 형법 절차로 구분하고 교회법적 성범죄 처리 절차가 민간 사법당국 절차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지적했다. 


공동체 일원은 교구나 수도회의 담당자에게 성적 비위를 신고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권고하는 것이 핵심


시클루나 대주교는 “절차가 지켜지고, 해당 국가법이 준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든 고발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조사해야 하며 조사는 불필요한 지체 없이 종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주교가 단독으로 성범죄 사건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교회 및 민간 전문가로 이뤄진 공개적인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직자 성범죄 조사에 대해서는 『성사의 성성 보호Sacramentorum sanctitatis tutela』에 따라 18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직자의 성적 비위 조사는 신앙교리성으로 이관된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성직자 성범죄의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에는 “사건이 교황청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렇게 신앙교리성이 조사를 마친 뒤에는 지역교회로 그 결과가 이첩되며, 지역교회는 신앙교리성과 긴밀한 협조 안에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직자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범죄를 대상으로 한 교회법 재판 절차상에는 사건 심사를 위한 예심관, 재판관, 조사관 등의 임명만이 규정되어 있다고 강조하며 “우리 체제상, 교회법 절차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신앙교리성 평의회(the Ordinary)의 사목적 배려를 통해 이러한 결함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속한 교구 담당자는 재판 진행 상황을 피해자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민간 사법 절차의 판결이 교회법 재판에 ‘증거’로 사용된다는 점과 성직자 성범죄의 경우 사안에 따라 공소시효가 면제되는 예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교회법적 결정에 있어서 “절차의 최종 결과를 해당 공동체에 알리는 것은 신앙교리성의 의무”라면서 “피고의 유죄와 내려진 처벌을 선고하는 결정은 지체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성직자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성직 후보 심사 강화 ▲성직 양성 과정에 미성년자 보호 교육 프로그램 설치 ▲인간적 자유와 건강한 윤리에 입각한 사제독신제 교육 등의 사제 양성 차원의 대책과 더불어 주교 후보자 선정 절차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주교 후보자 선정) 절차에 평신도 참여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주교와 수도장상들은 교황이 주교 후보자들을 적절히 식별할 수 있도록 도울 신성한 의무가 있기에 (후보자의) 결점을 드러내는 사실을 숨기거나 주교 직분에 적합한지를 평가받는 신부들에 대한 관심을 간과하는 것은 주교직의 성실성에 반하는 중대한 죄”라고 강조했다.


‘위기의 시대 속 교회 - 분쟁과 긴장을 해결하고 확고한 태도로 움직여야 할 주교의 책임’


▲ 루벤 살라사르 고메스 추기경


세 번째 발제를 맡은 콜롬비아 보고타 대교구장 루벤 살라사르 고메스(Rubén Salazar Gómez) 추기경은 성직자중심주의(Clericalism, 성직주의)로 대변되는 주교 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강한 어조로 질타하며, 이로 인해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들이 고통 받는다고 설명했다. 


성직주의는 직분이 가진 의미의 왜곡이며, 이로 인해 주교 직분은 권력을 행사하고 가장 약한 이들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살라사르 추기경은 “제일의 적은 우리 안에, 즉 우리 소명대로 살지 않은 주교와 사제 그리고 수도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적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른 곳에서도 이런 범죄가 일어난다는 이유로 가톨릭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성직자 성범죄를 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경계하며 “다른 기관에서 학대가 벌어진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의 학대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피해자들의 소중한 노력과 언론의 압박이 아니었더라면, 우리(주교)들은 이 부끄러운 위기를 이 정도까지 직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살라사르 추기경은 결국 각 주교들의 행동양식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주교들을 위한‘ 행동지침’을 교황청 차원에서 규정하여 주교성에서 발간한 『사도들의 후계자Apostolorum sucessores』 (교황청 주교성, 2004)와 함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주교의 행동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지침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우리(주교)들의 태만은 면직을 포함한 교회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나아가 은폐나 공모 혐의로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에 더해 살라사르 추기경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그들이 원하는 건 돈뿐’이라고 말하며 피해자 배상 문제를 치유의 차원이 아니라 금전적인 문제로 치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을 돈으로 해결해 다가올 추문을 잠재우려했었다”고 주교들의 행태를 규탄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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