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새로운 소식을,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한 세 개의 열쇠 말을 뽑아볼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길을 가기, 섬김, 무상성(거저 주기)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라고 파견하십니다. 길을 가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길을 가기’는 전할 말을 가지고 가는 파견이지요. 곧 복음을 선포하는 것, 구원을, 구원의 복음을 가져다주려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과제이지요. 따라서, 멈춰 서 있고 나가지 않는 사람은 세례에서 자기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 것이며,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
예수님 제자의 여정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제자의 또 다른 여정이 있는데, 그것은 내적 여정, 자기 안의 여정입니다. 기도 안에서, 묵상 안에서 매일 주님을 찾는 제자의 여정이지요. 그 여정도 제자는 수행해야 합니다.
제자가 항상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져가는 복음은 약하고 묽고 힘이 없는 복음이 될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이중의 길이 있습니다. 이는 오늘의 복음에서 명백히 하는 첫 번째 단어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걸어가다, 길을 가기”라는 단어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단어가 있는데, 이는 첫 번째 단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길을 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이지요.
복음서에는 “길을 가면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하고 기록되어 있지요. 여기에는 제자의 의무, 곧 섬김이 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지 않는 제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모든 제자의 준거점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교의 두 기둥, 곧 참행복과 우리가 심판 받을 ‘규정’을, 곧 마태오 복음 25장에 제시된 것을 말씀하실 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적 봉사”의 틀이 되어야 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 “그래, 난 그리스도인이야. 난 평온히 지내고 있고,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에 가며 계명들을 지킨다구.” 하지만 섬김은요! 다른 사람들에게요. 병자들 안에, 감옥에 갇힌 사람 안에, 굶주린 사람 안에, 헐벗은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
이 구절의 세 번째 단어는 무상성, 거저 주기입니다. 섬김 안에서, 무상성 안에서 길을 가기입니다. 사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우리는 구원을 거저 받았고, 순전히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구원을 돈 주고 사지 않았지요.
우리 중 아무도 구원을 앋을 만한 공덕이 없어요.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 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때 슬픕니다. 본당이 됐건 수도회가 됐건 교구가 됐건 무상성을 잊어 버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을 만나는 건 슬퍼요. ...
세 개의 단어입니다. 길을 가기. 선포하기 위한 파견으로서의 ‘길을 가기’입니다. 섬김.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요. 셋째, 무상성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그렇게 우리에게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희망을 보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
국방그라시아 수녀 : 성심의딸 수녀회 수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