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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길을 민족 스스로 개척하는 출발선에서
  • 이기우
  • 등록 2019-02-27 15: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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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사도요한 신부의 매일강론입니다. 이기우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3년간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지난해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깨달음, [이신부의 세·빛]으로 매일강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집회 4,11-19; 마르코 9,38-40



오늘부터 이틀 동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됩니다. 이 회담이 7천만 한민족의 염원을 담아 분단과 냉전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회담에서 분단과 냉정의 걸림돌이 치워지면 곧이어 서울에서 열리게 될 남북정상회담에서 본격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이르는 길이 닦일 것입니다. 


제 힘으로 광복을 성취하지 못한 대가를 70년간의 분단과 대결 구도로 톡톡히 치르고 이제야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민족 스스로 개척하는 출발선 상에 서게 되는 셈입니다. 이 길을 나아가려면 겨레 사랑이라는 기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겨레 사랑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의 사랑입니다. 


세상과 하느님의 공통 관심사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대한 세상의 시각을 그리스적 사유에서는 에로스와 필리아와 아가페로 읽습니다. 사람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현실이라는 특성과 함께 자기중심적이라는 한계도 작용하는 관점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랑에 대한 하느님의 시각을 히브리적 사유에서는 지혜로 읽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하는 지혜는 에로스와 필리아조차도 아가페적 성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특성입니다.


히브리적 사유를 중심으로 하고 그리스적 사유를 방법으로 삼는 통합적 사유가 고대와 중세 유럽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철학 사상을 형성했고, 근세에 이르러 가톨릭 사회교리로 집대성되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역대 교황들은 이 통합적 사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삶과 행적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학문적 원리로 집약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방법 원리가 보조성과 연대성 원리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셨고 이는 당연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국면에서 전개되는데, 일차적으로 보조적이어야 하고 이차적으로 연대적이어야 합니다. 보조성이란 사회악에 대항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동선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헌해야 하는데, 정부에게 가장 큰 공동선 책임이 부여되어 있지만 그에 비해서는 비록 보조적인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중간 단체들과 개인들의 역할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입니다. 이는 인간 존엄성 원리의 자명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 보조성 원리를 구현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공감하는 인격적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 공감 과정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일방적 시혜마저도 일종의 부드러운 억압이 되어 버립니다. 이 공감 능력이 없는 괴물 같은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고, 그런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전 정부와 그 전 정부에서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국정을 농단하는 사례를 지겹도록 지켜보며 매우 소중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나서도 예외 없이 그들의 믿음 덕분으로 그들이 구원되었다고 선언하시곤 하셨습니다. 실제로 당사자의 믿음이 없이는, 예수님의 신적인 기적 능력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이로 인한 구원에 있어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99%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이토록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감 과정을 거치는 인격화의 배려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다음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다수이기 때문에, 약자들과의 연대가 공동선 실현과 사회적 사랑에 필수적입니다. 그 연대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보조성이 인격화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화를 필요로 합니다.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사람들과 세력들의 다양한 입장과 역량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본질적 노선이 동일하면 방법상 차이는 관용을 베푸는 배려가 필수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은 그 뜻입니다. 연대를 위한 관용이야말로 진정한 사회화의 지혜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사랑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삶으로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사회적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사회적 사랑에는 인격화 과정을 통한 보조성 원리와 사회화 과정을 통한 연대성 원리가 필수적이라는 역대 교황들의 통찰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지혜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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