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태극기를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내 눈으로 본 태극기가 ‘설마…’하게 되는 그것인지 의심부터 하게 됐다.
그 의심은 태극기와 한 쌍을 이루는 성조기(간혹 이스라엘기)를 보는 순간 확신이 되고, ‘난 오늘 아무것도 못 봤다’ 혹여 눈이 마주칠까 얼른 눈을 내리깔고 저 멀리 돌아가게 된다.
태극기가 왜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어느덧 100주년을 맞은 3.1절은 더욱 각별하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되찾기까지 많은 선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이러한 희생을 발판삼아 우리는 ‘태극기’로 당당히 주권국가로서 다시 일어섰음을 알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태극기는 태극기인데 이 ‘태극기’를 보는 시선은 언제부터 불편해졌을까.
때는 바야흐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기울어진 나라를 똑바로 세우겠다는 시민들의 소망은 촛불에 담겨 전국 곳곳을 밝게 빛냈다.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세력은 사람들을 (돈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비폭력, 평화의 상징 ‘촛불’에 대항할 애국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선점하면서 엇나간 나라사랑이 시작됐다. 이후 이들에게는 ‘태극기 부대’란 별칭이 생겼다.
내년에는 부디…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은 다함께 기뻐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런 날에 나라사랑 투철하신 분들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서울역에서는 자칭 열성보수세력이 모여 3.1절 기념 집회를 하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했다.
하필이면 이들이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됐다. 태극기는 물론이고 3.1절에도 성조기는 빠지지 않았다(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아쉬움을 표하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주고 싶다…).
현 정권을 비난하고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그들은 당당하다. 시민들이 기쁘게 태극기를 흔들었던 그 거리에서 또 다른 태극기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다시 나라를 찾겠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 차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쳤을 100년 전 그날. 그리고 100년 후 오늘, 우리는 왜 또다시 둘로 나뉘어야 했을까. 내년 3월 1일은 부디 모두가 하나 되어 만세 삼창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나라사랑 투철하신 분들에게 정중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태극기 그만 이용하시고 이제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