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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려’
  • 전순란
  • 등록 2019-03-15 1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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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3일 수요일, 맑음



전깃줄 사이로 물까치가 날아가는데 깃털이 빠져 날리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하얀 눈송이다. 새 지나간 자리는 깃털로, 벚나무 밑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꽃잎으로 떨어지는 눈송이....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드라이 보내려고 한 켠으로 싸놓았던 두터운 외투를 다시 찾아 걸쳤더니 앞산이 검푸르게 맑다. 그동안 콧속이 아파 많이 힘들었는데 영심씨가 공기가 나빠서 그러니 창을 열고서 비록 미세먼지로라도 공기를 바꿔 집안에 산소를 채우라고 일러준다. 과연 날씨가 맑아지자 콧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우리가 괴롭힌 대기가 바로 우리를 공격하는 걸 목격하는 나날인데 우리는 손 놓고 타인만 정치만 나무라는 꼴이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찾아보고 실천할 일이다.


말남씨가 떠나고 날개 꺾인 새가 된 전순란. 어제 영심씨와 산보 나갔다가 ‘그린파크’ 자리에 아직도 흉물스런 건물을 보았다. 짓다가 버려진 괴물, 삼각산을 흠내는 흉물이다. 


그런데 오늘 이웃 아낙이 전화연락을 했다, 내 일기에서 '우리마을 운동사’를 보고 만나보고 싶단다. 바로 우리집길과 나란한 이웃 샛길이어서 내일 만나자 했다. 마치 폐허에서 수선화의 여린 앞이라도 발견한 기분이다.


우리가 2003년 로마 주교황청 대사관저로 삶의 자리를 옮기며, 라면 박스 한 개가 넘는 서류뭉치, 그 동안의 사회운동의 흔적인 문서들과 진정서 답변서 등을 말남씨에게 주고 갔는데... 아들 협이가 장가간다고 리모델링을 시작했고, 작업에 들어가면서 엄마가 남긴 모든 것을 버렸다는데 정말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허망함이라니! 한 역사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그 아낙이 역사의 새 페이지를 이어가길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려진다.



한목사를 만나 차에 싣고 부평 계산동 노틀담수녀원에 대모님을 만나뵈러 갔다. 언제나 따뜻하고 열정적인 우리대모님은, 특별히 이사야서 58장 7절의 말씀(“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을 들려주시며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사순절의 단식'을 해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우리 빵기가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을 돕고, 그를 통해 가진 것을 나누는 이들. 우리 빵고 신부가 소외되고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을 돌보는 것도 모두 '올바른 단식'이라시며 참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오후에 온전히 이런 단식에 투신하는 ‘민들레국수’ 서영남 선생과 베로니카씨를 만나게 되었으니 우리 대모님은 특별한 선견지명이 있으시다. 함께 간 이엘리, 엄엘리, 지영씨, 오이화씨, 모니카, 한목사... 모두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화수동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골고다 언덕에서 사랑으로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의 기적을 보았다. 서선생과 함께 '올바른 단식의 길'을 걷는 이들이 이뤄놓은 기적도 보았다.




정말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려’ 이집 저집 담을 넘어 그 일대가 민들레 꽃밭이 될 날을 가까운 시간 안에 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중에 제일 힘들고 예쁘게 단식을 사는 실비아를 위하여 재주도 많고 마음도 따뜻한 월미도 모니카가 맛있는 점심을 마련해 주었다. 음식 하나하나에 마음과 정성을 담아 주니 우리는 그녀의 사랑을 듬뿍 먹는다. 언제 봐도 당당하고 멋진 '디모니카'의 모니카에게 깊이 감사한다.


보스코는 나의 보호와 감독을 떠나 자유로이 먹고 마시면서(약이나 제때에 찾아먹는지 궁금하다) 로마에서 출장간 업무를 해내고, 주요인사들을 만나고, 찾아볼 곳도 찾아보고 있으리라. 로마야 영원한 도시이니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그다지 바뀐 곳이 없을 동네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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